한국 산업화 과정서 자기를 희생해 가며 수많은 기업 키워낸 '모성'부터 조명해야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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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12 20:46:17
- / 본지 26면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땐 참 힘들었다. 아버지 보내고, 남의 집 살이에 너희들 혼자 키우면서 그땐 눈물 대신 그냥 한숨만 났었다.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너무 막연해서…. 너무 막막해서 그땐 아무 생각 못하고, 너희 한 번 보고, 바다 한 번 보고 그렇게 살았다. 어찌 그 세월 견뎠는지 지금 생각하면 아득하다. 그렇게 너희 다 키워 서울 보내고 혼자 어두운 골방에 남았을 때, 난생 처음 소리 내서 울었다. 그때 나를 위로해 준 게 뭔 줄 아니? 너희 어릴 때 사진이었다. 때론 너희가 갑자기 찾아와 밥 달라고, 돈 달라고, 힘들다고 소리 지를 때…. 수십 번 가슴이 내려앉고 쓸어내려도 엄만 너희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았다. 바보 같이 좋았다. 사람들이 날 보고 더럽다고, 아프다고, 똥 냄새 난다고 해도 난 상관없었다. 너희들마저 집이 싫다고 안 들어오고, 집에서 코 막고 돌아앉아도 난 한 번도 너희들 원망한 적 없다. 아니! 그냥 고마웠다. 너희가 나를 딛고, 나를 밟고, 세상에 나가 잘되어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되고 유명해지고…. 내 몸 하나 희생해서 네가 예쁜 각시 만나 알콩달콩 잘사는 게 난 참 고마웠다. 남들은 너희 키우느라 고생했다지만, 사랑하는 너희 위해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잘된 너희를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흐뭇한지. 그게 제일 큰 내 행복이다.
하지만 아들아! 솔직히 엄마는 네가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한편으로는 겁도 난다. 네가 다시 돌아와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고 고마운데. 그동안 못 다한 효도하고, 나를 호강시켜 주겠다하고, 꽃 같은 젊은 시절 건강과 부귀, 영화를 다 되찾아 주겠다하고…. 너와 함께 덩실덩실 춤추면서 네 욕했던 사람들, 나 괄시했던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게 만들어주겠다니 그게 어디 꿈같지 않겠냐만….
사랑하는 아들아! 난 그냥 네가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눈치 없는 늙은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너희 집사람 몰래 약 사다주고, 집 청소해주고…. 하지만, 평생을 너희 키우며 얻은 병이, 찌든 냄새가 그렇게 하루아침에 고쳐지면 인생이, 세월이 거짓말 같지 않겠니! 너희 마음 다 안다. 너희 형편 다 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바라는 건 하나밖에 없다.
난 그냥 너희가 더 행복했으면 한다. 나한테 효도하는 건, 내 병 고치고, 집 고치고…. 그런 거 보다 너희가 행복한 게 내 행복이다. 아무것도 해준 것 없는 부모 만나, 세상에 남부럽지 않게 살 거라고 그렇게 발버둥 치는 너희 보며 엄만 정말 자랑스러웠지만, 늘 안쓰러워 눈물 난다. 엄마가 너희 키우면서 그랬듯이 너희 맘이, 너희 몸이 어디 온전할까 생각에 매일 아침 너희 위해 기도한다. 이젠 됐다. 지금껏 잘했다. 이제 먹고살 수 있게 되었으니, 이젠 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네 몸부터, 마음부터 살피면 좋겠다. 다시 활짝 웃으면 좋겠다. 비록 내가 이젠 나이 들고, 힘없고, 사는 게 보잘것 없지만, 가끔 아이들 데리고 엄마 찾아와 어릴 때처럼, 여기서 한숨 자고, 밥 한술 먹고, 억지 부리며 조금의 안식과 위로를 얻고 가면…. 엄만 그걸로 충분하다. 엄만 그게 더 고맙다.
네가 어디에 있건, 무엇을 하건, 때로 네가 엄마를 부끄러워해도, 엄만 괜찮다. 너희가 내 자식이라 괜찮다.
아들아! 사랑한다. 너희 볼 생각만 해도 너무 좋고 고맙다!
추신; 산업화 과정에서 동천은 삼성(제일제당), LG(락희화학), 대우(대우버스) 등 수많은 기업을 키워낸 어머니 같은 역할을 했다. 하천 복원, 도시재생, 창조경제도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동천의 모성(母性)을 헤아려 보았으면 한다. 동천을 어머니로 인식할 때, 동천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재생의 길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일신설계종합건축사 사무소 사장
※사외 필자의 견해는 본지의 제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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