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인터뷰-18대 대선과 진보개혁진영의 혁신⑩]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최명규 기자 press@vop.co.kr
입력 2013-01-18 13:10:33 수정 2013-01-21 15:10:39
18대 대선은 야권 지지자들이 이른바 '멘붕'이 될 만큼 야권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평가와 성찰, 이에 기반한 혁신 논의는 그다지 활발하지 않습니다. 치열한 논쟁과 깊은 성찰이 없다면 다음 대선은 또다시 야권의 패배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된다면 가장 고통받을 이들은 이 땅의 민중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진보개혁진영의 혁신'이라는 주제 아래 학자, 전문가, 정치인 등 각계의 평가와 성찰을 연속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론 등 기고도 환영합니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진보개혁진영의 혁신'이라는 주제 아래 학자, 전문가, 정치인 등 각계의 평가와 성찰을 연속인터뷰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반론 등 기고도 환영합니다)
야권은 대선 패배 이후 '리더십의 부재' 상황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없다'는 말만 무성하고 난국을 돌파할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리더십의 차이'를 야권의 선거 패배에서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로 지적했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지난 16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진행한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치열한 리더십 경쟁'을 강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차기 대권 주자로도 꼽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역할론'도 제기했다. 이 소장은 "특별히 주문할 분이 있다"며 "이제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정당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어 "박원순 시장은 민주당의 큰 리더 중 하나"라며 "(행정만 할 것이 아니라)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얘기하고 주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민주당이) 리더십 경쟁의 공간을 일상적으로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광역단체장인 안희정 충남지사나 송영길 인천시장 역시 박 시장과 마찬가지로 당의 진로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도 바닥에서부터 리더십 경쟁해야..'친노' 수장으로 자리매김은 바보같은 짓"
문재인 전 대선후보는 어떨까? 이 소장은 "(민주당의) 자산은 지키는 것이 맞다"며 "다만 성급하게 나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사람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 맞다. 그것은 자숙하고 성찰하는 모습"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밑바닥 리더십 경쟁'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후보였기 때문에 당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철저한 검증과 경쟁 절차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승리해야 한다. 특히 친노라는 정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민주당의 리더로서, 친노 프레임을 깨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이 소장은 민주당을 '리더십의 무덤'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치열한 리더십 경쟁과 절차를 통해 대표성을 획득한 리더에게는 충분한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단, 책임은 엄정히 물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최소한 리더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대신 책임을 엄정하게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지금 민주당은 권한은 권한대로 안 주고, '리더십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나. 당 대표만 하면 정치적 입지나 대중적 평가가 망가지게 놔둔다. 이것은 정말 바보같은 일이다."
"'어떻게 이길까'가 아니라 '어떻게 재건할까'로 봐야"
"'선거의 덫'에 빠지면 안돼..일상의 정치에서 승부 갈려"
이 소장은 야권의 이른바 '멘붕' 상태에 대해 "패배하면 언제나 스트레스가 있다"며 당연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소장은 "패배의 상처를 곱씹어보고 절절히 느껴야 한다"며 "단, '어떻게 하면 이길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재건할 거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깨진 진보진영이 했던 일은 2008년 선거를 이기자고 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바로 진보를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풀뿌리 조직을 움직여 사회 의제를 적극 발굴하고 지도자를 발굴했다. 그러니 오바마 같은 사람이 발굴된 것이다. '진짜 이길 사람을 내자', 그랬으면 오바마가 후보로 선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100% 힐러리가 후보가 됐을 것이다."
따라서 선거의 결과보다 향후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소장은 '히든파워'의 저자 찰스 더버 교수가 말한 '선거의 덫'에 빠지지 말 것을 주문했다. '선거의 덫'이란 '선거 승리 지상주의'를 달리 일컫는 말이다. 그는 "선거 때만 좋은 후보를 내면 이길 수 있다고 하는데 굉장히 오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람시도 얘기했지만 선거의 결과는 긴 과정의 끝일 뿐"이라며 "앞의 과정을 싹 다 무시하고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거냐만 연구하면 역설적으로 못 이긴다. 일상적인 진보 어젠다를 띄우는 일상의 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대선까지 5년이라고 하면 그 중 1년은 대선으로 뺀다 치고, 4년을 끌고 가는 일상의 정치에서 승부가 갈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음은 이철희 소장 인터뷰 전문이다.
- '리더십의 차이'가 대선 승패를 갈랐다고 지적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었나.
선거는 구도와 인물이라고 흔히들 얘기한다. 선거 여건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반MB 정서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정서가 팽배해 있었다. 그렇다면 기존 해법이 아닌 새로운 해법을 모색했어야 한다.
기존에 민주당이 복지 어젠다를 내걸면서 선거 국면에도 잘 맞아 떨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는 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차이가 분명했다. 민주당이 무상급식을 주장하면서 새누리당은 이에 반대해 찬반 구도가 형성됐고, 차별성이 강조되는 괜찮은 구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구도가 총선을 거치면서 흐트러져 버렸다. 박근혜 당선인은 경제민주화를 전면으로 내걸고 나왔고, 복지 이슈를 빼앗아 갔다. 그렇게 정책적 차이가 없다면 민주당은 차별성을 만들어내는 전략에 주력했어야 했다.
총선에서 깨졌다, 그러면 다시 선택은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우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어떻게 다른지 그 구도를 아주 쉽게 간명한 전선으로 풀어내 주는 것이다. '내 삶이 이렇게 달라지겠구나'를 이해시키려면 아주 쉽고 간명한 이슈 전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총선 패배 이후에도 민주당은 그것을 못 만들어 냈다. 분명하고 쉬운 전선이 없이 가다보니 야권은 단일화에만 몰입하고, 그러면서 차별화의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 버렸다. 후보도 그걸 못 만들어 낸 것이다.
그렇게 차이가 없는 선거로 가면 인물 위주로 갈 수밖에 없다. (후보의) 리더십이 얼마나 매력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다. 문재인 후보는 새로운 사람이었으니까, 착한 사람처럼 보였으니 좋은 조건은 있었다. 하지만 나라를 끌고 갈 만한 역량 갖고 있는지가 리더십에서 핵심이라고 본다면, 그 점에서 박근혜의 리더십과 문재인의 리더십이 갈렸다.
전체를 쉽고 간명한 이슈 전선 만들지 못해 후보의 부담 컸고 그 속에서 문재인 후보는 본인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민주당, 나아가 친노파에 묻혔다. 본인의 독자성과 리더십을 못 보여준 것이 막판까지 간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도 친박 측근 그룹이 있었지만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친노를 끌고 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여러 요인 중 중요한 것 하나가 리더십의 차이라고 하는 것이다.
-문재인 전 후보에게 리더십이 부족했다면 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리더십을 개인의 퍼스낼러티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은 리더십을 발휘하기 좋은 조건이었다고 본다. 9월 16일 후보로 선출된 이후에 후보에게 전권을 줬지 않나. 비상대권까지 쥔 후보였던 것이다. 당권과 후보권을 가지고 있었으면 얼마든지 민주당을 개편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선거도 친노 프레임이 아닌 다른 프레임으로 치를 수 있는 기회였다.
그것을 왜 못살렸나. 그것은 정치경력의 문제다. 박근혜 당선인도 10년 정도 정치경험이 쌓여야 내공이 쌓인다고 주장했는데, 몇 년이라고 단정은 못하겠지만 오랜 정치과정 속에서 리더십이 단련되고 숙성되며,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재인 후보는 그것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착한 후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리더십, 선명한 리더십, 변화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신출내기였지 않나. 2008년 금융위기가 왔을 때 공화당 매케인은 우왕좌왕한 반면, 오바마는 굉장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리더십을 만들었다. 그런데서 오바마는 결국 리더십 경쟁에서도 안 진 것이다. 오바마가 리더십이 안 밀린 것은, 사실은 정치경력도 있었지 않나. 지역 활동 등도 정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라를 끌고 갈 수 있는 대통령으로서 역량을 보여준 것이다.
문재인 후보는 그런 것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결국 정치경험이 부족한 것이다. 착한 심성은 있었으나, 위기시 결단해야 할 대목에서 결단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못했다.
- 선거조직 측면에서 민주통합당은 100% 다 가동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역 조직 가동은 잘 안 됐을 거라고 본다. 왜냐하면 '골목정치'라고 하는 지역으로 들어가면, 새누리당은 직능단체들이 있지 않나. 바르게살기협의회, 새마을운동협의회 등 여러 가지들이 있다. 그렇게 오랫동안 쌓여온 조직들에는 가진 자들,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 모여있는데, 이것이 새누리당의 조직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보수의 반대편에 서 있는 진보를 표방하는 야권은 결국 정당 기반이 아니면 노조다. 그런데 노조는 공장에 있는 것이지, 골목정치의 생활공동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당 조직도 지구당이 없어져 조직 역량 기반 자체가 허물어졌다. 지금 있는 지역위원회는 개인의 선거조직, 즉 반(半)사조직이다. 정당 조직과는 다르다.
지역공동체로 내려가면 노인, 자영업자, 주부, 이 3개 그룹이 메이저다. 이 메이저 집단들에게 조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고, 풀뿌리 조직도 없다. 호남향우회가 옛날에는 민주당의 당 기반을 형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당으로 연결로 된 게 아니라 그저 향우회로 연결돼 정치적인 압력 집단 비슷하게 돼 버렸다. 향우회가 정치적으로 외화될 때는 공적 조직으로 기능하기 어렵다. 과거에 호남 향우회가 민주당 정체성을 가진 지구당 중심으로 포진했다면 지금은 원시적 조직으로 가버렸다. 여기서는 생산적인 공적 결정을 내리는 단위로 가기 어렵다.
- 왜 그렇게 돼 버렸다고 보나.
지구당을 없애는 '오세훈법'이라 불리는 정치관계법 개정에 참여한 것이 민주당의 패착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지역으로 가면 노인, 자영업자, 주부들이 메이저인데 민주당은 당직 후보나 공직 후보를 뽑을 때 당원과 비당원의 벽을 허물었다. 비당원은 모바일로 참여하는데 지역구 공동체에 뿌리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지역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몸 쓰고 힘 쓰는 사람들은 동네 당원들인데 뛰어들 동기가 없는 것이다. 아무런 보상이 없는데,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나. 당원과 비당원의 차이가 없는데 거기서 열정이나 의무감이 생기겠나. 그런 걸 민주당이 놓친 것이다.
정당 모델 측면에선 모바일 공간을 여는 것도 할 수 있지만, 오프라인에서의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어떻게 해소할 지 고민했어야 했다. 결국 제도 개편으로 조직적 기반은 허물어지고 모바일 도입하면서 지역 당원을 소외시킨 셈이다. 조직에서 열세는 불가피한 현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 선거 전략 측면에서 박근혜 당선인 측에 진보 이슈를 선점당해 패했다는 지적도 나오는데.
선점당한 것이 아니다. 빼앗긴 것이다. 복지도 원래 민주당 어젠다 아니었나. 무상급식 이슈를 중심으로 민주당은 찬성, 새누리당은 반대, 이렇게 찬반 구도를 형성했다. 복지 어젠다를 민주당이 주도할 때는 항상 선거에서 우위에 있었다. 무상급식이나 반값등록금, 3+1(무상급식, 무상보육, 실질적 무상의료+반값등록금) 정책으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될 때 정점을 찍었다. 그 이후에는 이슈가 없어져 버렸고, 민주당은 쟁점을 못 만들었다.
경제민주화든 복지든 이것은 어젠다다. 왜 복지가 사회적, 정치적 의제로 부각됐냐면 무상급식이라는 간명하고 쉬운, 우리 삶에 피부에 와닿는 이슈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찬반 구도가 만들어져 복지라는 어젠다가 수용된 것이다.
민주당이 먼저 복지 어젠다를 제기했음에도 왜 빼앗겼나. 박근혜도 '우리도 할게'라고 나오면 찬반 구도가 형성이 안된다. 그러면 누가 복지를 더 잘 할 거냐의 문제가 되는데, 민주당은 새누리당보다 더 잘 할 것이라는 내용이 없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복지는 새누리당의 복지와 어떻게 다르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굉장히 부족한 점이 있었다.
박근혜 후보는 복지 이슈를 같이 들고 나오면서 쟁점을 없애기 위한 전략을 쓰고, 더 나아가 김종인이라는 인물을 끌어들여 경제민주화도 새누리당이 더 잘 할 것처럼 내세웠다. 민주당은 자기 어젠다를 내세우고도 박근혜 쪽이 꺼내니까 감당이 안 되고 속수무책이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도 복지도 어떻게 할 것인지 치열한 고민을 안 했다. 또 무상급식처럼 작더라도 간명한 정책 하나만으로도 차이를 만들어냈어야 했지만 실패했다.
재벌 순환출자 문제에 집중했는데, 국민들은 '그게 뭔데? 내 삶과 무슨 관련있는데?', 이렇게 밖에 나오지 않는다. 전선을 그것에 만드는 게 아니었다. 작고 쉬운 정책 하나로 차이를 만들어내고, 우열구도가 아닌 찬반구도로 재편했어야 한다. 이것을 만드는 것이 바로 당의 역량이다. 그런데 못해냈다.
-왜 그런 구도를 못만들어 냈다고 보나.
총선 패배 이후 6월 9일 등장한 지도부의 무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때 당 대표의 무능이 심각했다고 본다. 단지 한 사람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민주당의 무능이다. 그 당 대표가 전략적 구도를 짰을 때가 언제인가. 1997년이고 2002년이다. 10년이 지나도 그 전략 그대로 쓰는 것이 말이 되나.
또 복지에 대해 뭘 아나. 복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집중적으로 고민한 사람이 전략적 구도를 만들어냈어야 한다. 민주당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결국에는 유의미한 전선을 허물어 버렸다.
유일하게 남은 것이 세대 전략이었는데, 그러다 역풍 맞은 것이다. 2030세대도 몰려나왔지만 5060세대는 더 나온 것 아닌가. 전략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건 민주당의 역량의 문제다. 지난 해 당을 이끌어왔던 상층부, 특히 한명숙·이해찬 전 대표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 관련해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뤘다면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다고 보나.
단일화는 '아름다운 단일화'라는 것이 없다. 명분있는 단일화로 갔어야 하고 빨리 끝났어야 했다. 간명한 단일화로 가고, 바로 차별화 국면으로 넘어갔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니 끝까지 단일화 프레임에 목매고 있었던 것 아닌가.
또 단일화는 97년부터 야권에서 줄기차게 해 왔던 것이라 이제 별로 새로운 것도 없다. 이미 익숙한 전략은 효과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거기에 목맬 것은 아니었다. 단일화하되 신속하고 간명하게, 그 이후 차별화로 가든지 했어야 했다. 조금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단일화 플러스 차별화 전략으로 가는 것이 맞았다.
문재인과 안철수가 만나서 단일화를 어떻게 할 거냐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박근혜와 전선을 만들 것인지, 또 저쪽과 무엇이 다른지 차별화 전선을 운영했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간명한 단일화를 하든지, 아니면 단일화 전선 플러스 차별화 전선, 이렇게 두 개 전선을 운영하든지 선택을 했어야 하는데 어리버리하다 다 놓쳤다. 다시 말하지만 선거에서 아름다운 단일화라는 것은 없다.
- 더불어 안철수 후보가 내세웠던 '의원 정수 축소' 등 전략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가.
안철수 후보를 과도하게 비판하고 싶진 않다. 의원정수 축소안이 처음 나왔을 때도 여러번 비판했지만 방향은 잘못된 것이다. 안철수 편을 좀 들어주자면, 안철수 전 후보가 그렇게 잘못된 방향을 내놓은 것은 정치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거나 민주당이 그만큼 기득권 집단으로 비춰져 이를 허물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야권 지지층의 열망이 있었던 것이다. 두 가지 다 있었다. 너무 안철수 후보만 탓할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좀 더 신속하게 기득권을 내려놓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안철수 측에서 잘못된 방법은 안 나왔을 것이다.
- 상대를 부정하는 이른바 '안티 테제'를 털어내고 '선악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민주·진보 진영의 중요한 과제라 했다. 어떤 내용인가.
샤츠슈나이더가 쓴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민주주의는 누구도 자신이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체제'라고 했다. '나는 절대 옳다, 상대는 무조건 틀렸다', 이런 이분법으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지 않는다. 상대방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바탕 위에서 '내가 더 낫다', 또는 '내 방안이 더 낫다'고 상대적인 우열을 주장해야지, 선악을 주장하면 안 된다. 막스 베버가 얘기했던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에서도, '신념 윤리'만 주장하면 답이 안 나온다. '책임 윤리'의 바탕에서 생각하고 상대를 인정하면서 대신 내가 더 나은 해법을 가지고 있다고 할 때, 그것이 먹히면 선거에서 이기고, 먹히지 않으면 그 뿐이다.
'독재자의 딸'이란 표현 속에는 이미 가치가 들어 있다. 진보의 가치, 보수의 가치는 선택의 문제다. 진보는 옳고, 보수는 나쁘다고 보면 안 된다. 서로 다른 이념들은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다. 진보 안에서도 나쁜 것은 나쁜 것이고, 보수도 그렇다. 어떤 사람의 품행이나 행동을 가지고 나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이념이나 진영 ,정당에 대한 선택으로 선악을 판단하게 되면 사람들은 헷갈린다. 객관적으로 못 보는 것이다.
이번에도 얼마나 야권이 박근혜 당선인을 우습게 봤나. 아는 것도 없으면서 대통령 하려고 한다고 말이다. 이미 선악의 프레임이 깔려 있기 때문에 오판한 것도 있다.
- 야권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이른바 '멘붕'(멘탈붕괴) 상태에 빠진 것은 이 '안티 테제'와도 관련이 있을까.
꼭 그렇진 않다. 선거에서 패배하면 언제나 스트레스가 있다. 미국도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가 깨지고 나서 진보진영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멘붕'이 온 것이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패배의 상처를 곱씹어보고 절절히 느껴야 한다. 단, '어떻게 하면 이길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재건할 거냐'로 봐야 한다.
민주당도, 다른 야권이나 진보진영도 너무 선거만 쳐다보면 안된다. 그람시도 얘기했지만 선거의 결과는 긴 과정의 끝일 뿐이다. 앞의 과정을 싹 다 무시하고 선거에서 어떻게 이길 거냐만 연구하면 역설적으로 못 이긴다. 일상적인 진보 어젠다를 띄우는 일상의 정치가 필요하다. 앞으로 대선까지 5년이라고 하면 그 중 1년은 대선으로 뺀다고 치고, 4년을 끌고 가는 일상의 정치에서 승부가 갈린다.
선거를 1차 목표로 삼다 보면 빠지는 덫이 바로 '선거의 덫'이다. 찰스 더버 교수는 선거의 덫에 빠지면 선거를 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선거 때면 좋은 후보만 내면 이길 수 있다 하는데 굉장히 오판하는 것이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깨진 진보진영이 했던 일은 2008년 선거를 이기자고 하는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다. 바로 진보를 재구성하는 일이었다. 풀뿌리 조직을 움직여 사회 의제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도자를 발굴했다. 그러니 오바마 같은 사람이 발굴된 것이다. '진짜 이길 사람을 내자', 그랬으면 오바마가 후보로 선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100% 힐러리가 후보가 됐을 것이다.
벌써부터 대선만 바라보고 2017년 체제, 2018년 체제 프레임이 나오는데 다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향후 5년의 과정이 정말로 중요하다.
- 박근혜 당선인이 득표한 1577만3128표, 51.55%의 득표율과 문재인 전 후보의 1469만2632표, 48.02% 지지율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대선을 보수와 진보의 1대1 대결이었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문재인 후보가 분명한 진보의 정체성을 가지고 선거를 치렀나? 문 후보는 진보적 내용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니다.
또 1대1 대결이었다고 하면 2002년에도 비슷했다. 당시 노무현 후보가 57만표 차이가 이겼다. 여기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100만표 가까이 얻었다. 다시 말해 야권은 157만표 이긴 것이다. 반면에 이번 대선에는 108만표를 졌다. 1대1 대결에서는 무조건 보수가 이긴다? 그 말은 동의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양쪽에 고정표가 있다. 후보 요인 때문에 왔다갔다 하면서 108만표 차이가 난 것이다. 표 수에 주목하는 사람들은 최다 득표를 강조하는데 인구 수가 늘어났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중요한 것은 득표율을 봐야 한다.
거기에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48%가 나중에도 온전히 야권을 지지한다?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위할 문제가 아니다. 이 48%가 여전히 5년을 견고하게 버텨서 민주당을 민다? 그것은 착각이다. 이미 흩어지고 있다. 대선 끝나고 그 다음 날부터. 5년 동안 소팅(sorting), 즉 재편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야권이 앞으로 이를 어떻게 관리하는가가 중요하지, 48%가 그대로 있고 2%만 더 하면 된다는 것은 정말 한심한 논리다.
- 민주당에 대해 "대선 후에도 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도 유효한가?
선거는 질 수도 있고 이길 수도 있다. 유럽이나 미국만 봐도 매번 이기는 것이 아니지 않나. 중요한 것은 지고 나서 무엇을 하느냐다. 지금 민주당을 보면 지고도 남을 정당이었다. 3주 만에 비대위가 꾸려졌고, 그 비대위마저도 거꾸로 돌아갔다. 또 비대위가 대체 지금 무슨 메시지를 주고 있나.
2007년부터 총선 두 번 대선 두 번, 즉 네 번의 큰 선거가 있었다. 네 번의 선거에서 지고 난 후에도 민주당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내가 책임질게. 다음 총선은 불출마', 이렇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민주당은 심하게 말하면 죽은 정당이다. 정말 이대로 가면 죽는다. 이미 뇌는 멈췄고, 심장도 멈췄다. 심장이 멈추면 전기충격으로 소생시키지 않나. 그런 큰 충격이 필요하다. 인공호흡으로는 안된다. 전기충격을 가해야 한다.
- '친노 책임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나.
친노 프레임을 작동시킨 것에 대한 책임, 그 정도에서 책임지면 된다. 거기서 더 나아갈 필요는 없다. 친노 이전에 한명숙, 이해찬 전 대표 책임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그 사람들은 친노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기본 정체성을 친노라고 보진 않는다. 정파나 계파로서의 친노 책임론을 제기하는 건 과도하다. 그러나 친노 안에 있는 대표선수 몇 사람들은 책임질 부분들이 크다. 다만, 친노라는 이유만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문희상 비상대책위원회'가 활동에 들어갔다. 위원들도 꾸려지고 '대국민 사과 버스'도 진행했다. "절만 하면 다냐?"는 비판도 나오는데, 어떻게 평가하시나.
정말 한심한 일이다. 지금 민주당은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해법도 이미 많이 나와 있다. 그 중에서 치열하게 모색하고 선택해서 실행할 때이다. 중요한 것은 혁신 의지와 실천이다. 지금까지는 그것을 안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민심을 듣자고 하면서 왜 버스를 타고 다니나. 가장 하부 조직에서부터 민심이 수렴되게 해야지. 밑바닥에서부터 논의를 조직해 위로 올라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여론을 수렴하는 방식이다. 버스 타고 다니는 것은 언론만 쳐다보고 민심을 파악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렇게 쓴소리를 다 듣고 나면 뭐가 달라지나 .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 이런 해법에만 골몰하니까 정당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왜 이 소중한 시간에 외부 비대위원 한 명을 못 데리고 오나. 그 만큼 지금 민주당은 사람들이 들어가기 싫어하는 정당인데, 그것도 못 풀면서 욕은 진탕 먹고 또 쳐다보고만 있을 건가. 국민들이 결국 원하는 건 혁신을 위한 실천이 뭐냐다.
- 민주당은 박근혜 정부를 견제할 제1야당이다. 민주당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어떠한 것인가. 또한 차기 당대표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은 어떤 것이라고 보나.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은 지금 2004년 체제란 말을 썼다. 아직까지 주류가 그렇다는 얘기다. 386과 친노가 묶여서 지금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을 깨야 한다. 그러려면 세대교체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정파색이나 계파색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등장해서 1년 정도 과도기를 갖는 것도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이든 좋다. 이 안에서 경쟁하고, 당원들이 참여하는 전면적 프로세스를 거쳐 정통성 있는 리더가 나오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전권을 주면 된다.
집단지도체제로 가면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정파나 계파들이 현상 유지하는 것이다. 최소한 리더에게 충분한 권한을 주고 대신 책임을 엄정하게 물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지금의 민주당은 권한은 권한대로 안 주고, '리더십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나. 당 대표만 하면 정치적 입지나 대중적 평가가 망가지게 놔둔다. 이것은 정말 바보같은 일이다.
특히 당내 리더십은 언제든 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와야 한다. 툭하면 합의 추대를 한다고 하는데 고질적인 병폐다.
- 리더십의 문제는 결국 사람의 문제라고 본다면, 준비된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공허한 구호로 그칠 가능성도 높다.
리더십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정치인들이 숙성되고 진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자는 성공하는 반면, 어떤 자는 실패하고 무너지기도 한다. 리더십 경쟁의 공간을 일상적으로 열어줘야 한다. 그리고 절차를 통해 대표성을 획득하면 권한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박근혜 당선인도 비대위원장 때 공천권 쥐었기 때문에 힘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민주당 비대위는 힘이 없지 않나.
도덕적 명분을 쥐어야 하는데, 만약에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다음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하고 흐름을 만들면서 중진들의 퇴진을 이끌어낸다면 비대위는 명분 있고 힘있게 갈 수 있다. 차기 대표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는 문제는 당헌·당규를 고치면 된다.
지금 비대위는 도덕적 명분이 얼마나 있나. 지도부가 스스로 내려놔야만 한다. 386도 그 세대가 당권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내려놔야 한다. 국회의원 3선, 4선 하려고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 386들이 2000년부터 되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재선, 3선이다. 그 정도면 국회의원도 할 만큼 한 거다. 이제 당을 바로 세우겠다고 한다면 (의원) 배지나 출마에 연연할 일이 아니다. 그런 것에 연연한다고 해서 지도자 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런 점에서 과감하게 버리고, 자기 것을 버리고 도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민주당 관련된 사람 중에 특별히 주문할 분이 있다. 이제는 박원순 서울시장도 정당에서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장으로서 민주당의 큰 리더 중 하나다.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얘기하고 주장해야 한다. 당의 일을 나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박원순 시장은 지금 침묵하고 있는데, 이것은 온당치 않다.
박 시장 뿐만 아니라 누구나 다 말할 수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나 송영길 인천시장도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누구든지 말할 수 있게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 리더십이 하루 이틀 안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 리더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십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정치과정 내에서 풀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정치에 대한 불신과 정치 부패가 있지만, 그럼에도 왜 정치라는 방식, 선거라는 방식을 통해 최고권력자를 뽑나. 그것이 가장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이 한 표라는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선거밖에 없다. 그것을 하겠다는 사람은 이 과정 속에 들어와 충분히 검증되고 숙성돼야만 한다. 경제분야에서 아무리 잘 해도 정치로 들어오면 초짜이지 않나.
박원순 시장도 행정만 할 것이 아니라 정당 문제, 정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안철수나 문재인도 마찬가지다. 다 들어와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리더십을 만들어가는 길이다.
- 어쨌든 문재인은 민주당의 자산으로 볼 수 있는데 지키고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
자산은 지키는 것이 맞다. 다만, 문재인 후보가 성급하게 나오면 안된다. 대중은 감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정서를 어루만지는 액션(을 취하는 것이) 맞다. 그것은 자숙하고 성찰하는 모습이다. 시간이 지나면 기회는 주어진다. 후보였기 때문에 당의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부터 철저한 검증과 경쟁 절차를 거치면서 그 과정에서 승리해야 한다. 특히 문재인 후보가 친노라는 정파의 수장으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정말 바보 같은 일이다. 민주당의 리더로서, 친노 프레임을 깨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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