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기대 무너진 70대 분노 |
암검사 50대 “나라가 병원비 다 해준다더니…”
‘말바꾼 복지공약’ 싸늘한 민심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암센터 앞 대기실. 생후 7개월인 딸아이가 급성골수백혈병을 앓고 있는 박아무개(36·서울 구로구)씨는 복도 의자에 앉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어린것이 힘든 치료를 받느라 고생해 너무 안쓰러워요. 더욱이 치료비가 1년에 3000만~4000만원씩 들어간다는데, 그 생각을 하면 잠이 안 와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이 바뀌어서 지원을 더 못 받는 거 아닌가요? 진작 민간보험이라도 들어놨어야 하는 건데….”
서울대 암병원에서 만난 박아무개(52·서울 영등포구)씨는 “선택진료비나 상급병실료 같은 걸 나라가 다 지원해준다고 알고 있었는데, 환자 입장에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의료 공약을 바꾸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박씨는 유방암이 의심돼 이날 세번째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맹아무개(71)씨도 요즘 울화가 치민다고 했다. 현재 매달 60만원가량의 국민연금을 받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박근혜 당선인이 약속한 기초연금을 온전히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준다고 해서 혹시나 하고 기대했는데,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일부만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 우리는 자식들에게 다 퍼준 세대여서 어려운 사람들의 기대가 컸는데, 요즘 주변에서 많이들 실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당선인의 복지 공약이 말바꾸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새 정부 출범도 전에 뭇매를 맞고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누리당 쪽은 원래 공약을 국민들이 잘못 이해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공약을 애매하게 만들어 국민들에게 ‘장밋빛 희망’을 심어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인수위는 지난 6일 ‘4대 중증질환(암·심혈관·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 100% 보장’ 공약에 선택진료비(특진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애초부터 포함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병원에 6인실은 빈 병상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상급병실을 이용하거나, 사실상 선택의 여지 없이 특진비를 내야 하는 환자 처지에서는 명백하게 ‘말 뒤집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초연금 도입 즉시 65살 이상 모든 노인과 중증장애인에게 현재 기초노령연금(월 최고 9만4000여원)의 2배 수준의 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 또한 수혜 대상이 ‘모든 노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달 28일 인수위 국정과제 토론에서 기초연금 도입 방안과 관련해 “(국민연금) 가입자에 대해서는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기초부분(균등부분)에다가 20만원이 안 되는 부분만큼 재정으로 채워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인수위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에게는 소득과 가입 기간에 따라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향으로 공약을 수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아무개(64·경남 창원시)씨는 “나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도입 초기부터 가입했다. 나와 같은 사람이 국민연금을 튼튼하게 키웠다고 생각하는데, 국민연금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연금을 덜 받는다면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반발하고 나섰다. 노인단체인 ‘노년유니언’과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7일 오후 인수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4대 중증질환’ 공약이 폐기되면 민간의료보험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며, 기초연금의 차등 지원은 국민연금 수령자를 차별해 국민연금의 가입 유인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유진 최유빈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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