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들의 서러움 달래주던, 뱃손님을 두팔 벌려 맞이하는,
관광객엔 이야기 보따리 푸는 그대, 부산의 연인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3-04-09 19:58:19
- / 본지 13면
송영명 화백이 그린 '오륙도'. 부산 남구 용호동 승두말의 유채꽃밭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져 봄의 향취가 피어나는 듯하다. |
- 그들의 이루지못한 그리움인양
- 섬백리향 애잔한 향기 번졌고
- 이곳 사람들 의연한 기상처럼
- 바다위 의전 늠름하게 펼치고
- 등대, 굴, 송곳, 수리, 방패, 솔
- 각 섬마다 개성이 넘치는 곳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오륙도, 그날 우리가 이기대 끝에 이르렀을 때 회색의 스라브 집들과 회색 골목은 텅 비어 있었다. 닭을 길러 생을 영위하던 한센인들이 살다 떠난 자리. 그 철거지역 어느 한 집에 누구의 그리움처럼 빨랫줄에 하얀 셔츠가 바람을 타고 있었고 그 부락 끝에 오륙도 다섯째 섬인 우삭도가 턱 버티고 서 있었다. 그 인상적인 장면이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훌쩍 건너뛰면 닿을 것 같은 섬. 가슴 떨리도록 아름다운 바다와 섬을 바라보며 언덕에 핀 섬백리향 군락을 만났다. 흰 섬백리향은 파도가 하얗게 치다 사려들 때의 그 하얀 거품 같은 자잘한 꽃들이 핀다. 언덕에 오래 살던 그들의 이루지 못한 그리움처럼 애잔한 향기가 멀리 퍼지고 있었다. 지금은 마지막 남은 집의 그 하얀 셔츠처럼 이 바다 언덕에서 하얀 섬백리향을 만나기는 어려울 듯하다.
도선을 타고 바라본 오륙도 모습. 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
풀잎에 이슬처럼 보풀보풀 꿈꾸는 꽃
향기가 백리를 가선 뉘 가슴을 흔드나
새 길을 걸으며 섬백리향 찾아 가네
이루고 이룬 끝에 하얗게 비운 생각
촛불을 켜든 기억이 섬백리향으로 피네
(시조 '섬백리향의 기억')
사라진 날들의 꿈은 거대한 아파트로 다시서서 오륙도를 바라보며 더 큰 꿈을 가꾸는 것이다. 오륙도는 부산의 꿈이자 한국의 명승지다. 부산항으로 들어서는 초입에서 부산을 방문하는 손님을 당당하게 사열한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부산입니다!' 늠름하게 의전활동을 펴는 섬, 부산 사람의 기상인 듯 반듯하고 청청하고 의연하고 멋있는 섬이다. 그래서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이다. 부산 사람의 연인이다. 아니 세계인의 연인일 수도 있다.
유람선을 타면 그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유람선은 태종대, 용호부두, 부산연안부두, 미포선착장에 있다. 그 알싸하고 거센 바닷바람과 하얗게 이는 물보라, 생생한 파도소리에 싸인 오륙도는 가히 가슴 벅찬 생의 기쁨으로 다가와 마음의 티끌을 몰아낸다.
보는 위치에 따라 겹쳐져 보이기도 하고 둘만 보이다가 넷 만 보이다가 다섯 여섯으로 보이는 부산의 보배로운 섬. 오륙도. 맑은 날은 낭랑하고 안개라도 낀 날은 그렇게 우수에 젖어드는 섬, 참으로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절경을 보여주는 섬이다.
부산바다 오륙도, 사열하는 의장대다
파도의 행진곡에 푸른 보폭을 내딛으며
가슴에 깃폭을 달고 푸른 가슴을 나눈다
달밤엔 형제들이 오순도순 등을 대고
물려 받은 이름표를 반짝반짝 닦는다
등대, 굴, 송곳, 수리, 방패, 솔, 섬마다 기원 있다
한국의 명승인 장쾌 수려한 수문장
이제는 오륙도가 몇 섬인지 묻질 말라
무한량 인간 사랑이요, 세계로 뻗는 꿈이다
(시조 '젊은 오륙도')
내친김에 사설시조 한수 읊어보며 다음 날은 등대섬에 올라 등대지기를 노래하리라.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 조용필 노랫소리 신나게 담아 싣고 부르릉부릉 유람선, 오륙도 보러 간다! 얼쑤! 철없는 갈매기 끼룩끼룩 새우깡 받아 벅고 아, 별미야! 끄르르 좋아라 웃음소리 요란타가 돌아가고. 이기대 동쪽에서 우삭도가 뉘엿뉘엿. 방패, 솔섬을 거느리고, 밀물 때 세자길이 두 섬으로 떨어지매, 다섯, 여섯 하다 오륙도라! 참으로 풍류 맛깔고운 이름이 아니겠소! 방패섬은 방패막이, 솔섬은 솔숲머리. 수박색 바다에 백파는 일고 유람선은 우쭐우쭐 우삭도 곁 우회하고. 객들은 선장의 안내 말에 우측좌측 돌아보며 싱글벙글 화안일세! 수리섬 상공은 보라매가 날지만 '애기봉'에 치성하면 잉태, 자손번영 한다하고! 송곳섬은 송곳이라 발 디딜 틈 없으렸다! 큰 굴 뚫린 굴섬 안은 맑은 물 떨어지고 밖은 가마우지 서식처, 그들의 배설물이 흰 뺑기 빛이라. 흰 섬이란 별칭을 얻었네. 유인도인 밭섬은 부산의 상징 등대섬, 거친 바다 항해 하며 귀항하는 배를 맞아 깜박깜박 눈웃음치며 반겨 맞는 오륙도 등대지기, 고맙기 한량 없제! 아슬아슬 흰 계단 에돌아 오르면 그 끝에 선경이 펼쳐지렷다. 발치께 강태공들 바다 낚기에 몽매삼경. 쿨 쿠르르 유람선은 호기 있게 뱃머리를 돌리는데 알싸한 바닷바람이 가슴 막힌 생각들을 훌훌이 카랑카랑 헹궈준다. 가슴의 찌꺼기를 털어내고 힐링! 힐링! 상쾌한 새맘 받아 안고 명승 오륙도를 돌아가는 부산사람, 참 선경이 따로 있나!
보이소, 뭐라 캐싸아도 부산사람은 부산자랑, 오륙도 기질 맞지예!
(사설시조 '오륙도')
■그림=송영명 화백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및 초대작가
-부산미술협회 이사장 역임(2004~2009년)
-현 부산예술단체총연합회(예총) 이사장
■글=박옥위 시인
-시집 '들꽃 그 하얀 뿌리' '그리운 우물' 등 9권
-이영도 시조문학상, 부산문학상, 부산여성문학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부산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그림을 그린 송영명 화백과 글을 쓴 박옥위 시인은 부산 기장에 사는 예술인 부부로, 요즘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본문에 소개된 시조는 모두 박 시인의 작품이다.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남구,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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