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지인권

[왜냐면] 발달장애인은 두번 차별받는다 / 김진우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25.

등록 : 2013.04.22 19:22 수정 : 2013.04.22 19:22 [한겨레신문]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한다. 기능과 역할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 소중함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사실 장애의 종류로 경중을 나눈다는 것은 참 부질없는 짓이다. 시각기능이 약화되면 청력이나 또 다른 감각이 발달하듯이, 장애가 ‘결손’이 아니라 ‘다름’이나 ‘특별한 능력’으로 이해된다면 장애의 종류는 다른 것이지, 서열적 지위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관념에 불과하고 현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의 밑바닥에는 늘 장애인이 있다. 몇몇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장애인들이 있지만 평균적으로 볼 때 학력이건, 소득이건, 평균수명이건 간에 모두 바닥이다. 기회의 평등을 이야기하지만 기회는 늘 박탈당해 왔다. 온몸에 쇠사슬을 묶거나 이승을 떠나는 목숨이 언론에 보도되어야만 사회가 조금 귀 기울여 주는 정도였다.

 

하지만 여기에도 불편한 진실은 있다. 장애인들이 비장애인에 비해 열등한 위치에 있지만, 장애종별을 따지고 보면 그 속에서도 발달장애인들은 늘 정책의 뒷전에 물러나 있었다는 점이다. 90%의 신체장애인들에 비해 늘 소수였던 7%의 발달장애인들은 그들에게 가해지는 온갖 성폭력과 신체적인 폭행, 언어적 폭력에 대해 한번도 집단적으로 사회지성에 호소한다거나 무력을 사용하여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알릴 수가 없었다. 그러한 것은 늘 장애실천 전문가들의 몫이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념이 주창되고 정책이 고안되었지만 신체장애인들은 소수 장애인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급했다. 그만큼 발달장애인은 사회에서도, 장애인들 사이에서도 뒤로 밀려나 있었다. 그렇게 된 데는 정보접근과 의사소통의 이슈가 관련되어 있다. 먼저 우리 사회는 정보를 습득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방법을 모르며 또 고려하지도 않는다.

 

흔히 우리들은 자녀와 대화할 때는 직장 내에서 토론할 때와는 사뭇 다르게 한다. 상대방의 처지에 맞게 정보를 제공하고 대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과는 아예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또 제공되는 정보를 소화하지 못할 것이라 지레짐작하여 아예 정보를 주지 않거나 대화의 상대자로 삼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들이라면 어떻겠는가 생각해보라. 자신에게 정보를 제대로 주지 않고 의미있는 대화의 상대자로 생각해주지 않으면 우리 또한 대화와 토론, 주장의 당사자로 쉽게 나아갈 수 있을까? 정보가 없으니 나서기가 어렵고 나섰다가 분위기 파악 못한다고 핀잔을 듣지 않을까 주저주저하지 않을까? 나를 소중한 대화 상대자로 생각해주지 않는 사람들과 얼마나 인내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다른 종류의 장애인들은 어떨까? 시각장애인에게는 점자와 음성파일을 제공해주고, 청각장애인에게는 수화와 구화, 필담 등 다양한 의사 표현 및 소통의 방식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고 최근에는 수화언어기본법 제정 움직임까지 있는데,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보제공과 의사소통 지원정책은 아직 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도 최근에는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권익을 어떻게 옹호해야 하며,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또렷하게 드러낼 것인지,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지난해 정부에서는 발달장애인 지원 종합계획을 발표한 바 있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에서는 제19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발달장애인 지원법을 발의한 바 있다. 최근 대통령선거의 공약까지도 이 법의 제정을 끌어안고 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발달장애인 지원정책의 핵심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보접근권과 의사소통 보장에 있다는 것이다. 100가지의 지원정책이 있어도 자신이 알지 못하고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면 발달장애인의 주체적인 삶과는 연결되지 못한다. 이때까지 누군가의 의사와 결정에 일방적으로 따르는 그런 세상을 사는 것을 이제는 그만 강요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발달장애인을 대화 상대자로서 존중하면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말하려는지 귀 기울여 들어준다면, 이를 위해 충분한 정보를 그들의 수준에 맞게 가공해서 제공해 준다면 장애인 복지의 수준은 한층 높아질 것이다.

 

장애인의 날을 맞아 카메라맨을 앞세워 한 끼 밥 먹어주는, 마주앉아 웃는 모습은 이제 식상하다. 그만하자. 오히려 그들의 정보접근권 및 의사소통 지원을 위해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어떻게 소통할 것인지를 배우고 와서 발달장애인에게서도 그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귀 기울이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달라. 그것이 국민의 행복이고 소통이다.

 

김진우 덕성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