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복지인권

“속옷 보일까 걱정…” 아시아나 왜 치마만 입나요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6.

등록 : 2012.03.05 08:33 수정 : 2012.03.05 14:49

 

 

 

승무원 복장·용모 규정 보니
“성적 수치심·승객안전 모르쇠”
머리핀 수·화장색까지 제한
유니폼에 바지는 아예 없어
응급상황땐 ‘위험원인’ 지적
노조 쪽 “인권위 진정 검토”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인 김미정(가명·31)씨는 유니폼으로 치마만 입어야 하는 것이 불만이다. 일하는 데 너무 불편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승객에게 서비스를 하다 보면 앉았다 일어나는 경우가 다반사이고, 무릎 꿇고 일을 할 때도 많은데 속옷이 보일까봐 신경이 많이 쓰인다”며 “성적 수치심을 느낄 때도 많다”고 말했다. 승무원 안전에도 치명적이다. 김씨는 “지난해 난기류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려 넘어진 적이 있었다”며 “치마가 신경 쓰여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다”고 말했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응급조치를 하는 데도 지장을 줄 수 있다. 김씨는 “아직 그런 경험은 없어 다행이지만, 비상 상황에서는 승무원이 의자에 올라가 승객들을 안내하고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심폐소생술도 해야 하는데, 치마를 입고 있으면 아무래도 활동에 제약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대한항공은 2005년부터 여성 승무원 유니폼에도 바지를 도입했으나, 아시아나항공은 여전히 치마만 고수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는 “승무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바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아 회사에 요구한 상태”라며 “편하게 일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심각한 노동권의 문제이고,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이 내부 규정을 통해 이처럼 여성 승무원의 복장은 물론이고 머리 모양과 화장 등 용모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 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4일 <한겨레>가 입수한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복장·용모 규정’을 보면, 여승무원 머리에 꽂는 실핀 개수부터 귀고리 크기까지 제한을 하는 등 1970~80년대 중·고등학교를 연상시킨다. 우선 치마는 무릎중앙선에 맞춰야 하고 유니폼을 입은 채로 안경을 쓰거나 껌을 씹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승무원들의 대표적인 머리 모양인 ‘쪽진 머리’도 규정이 까다롭다. 머리 고정 위치를 귀 중앙선에 맞추고, 앞머리를 내릴 경우 이마가 3분의 1 이상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머리에는 실핀을 2개까지 허용하고, 귀고리나 목걸이는 가로와 세로 1.5㎝를 넘으면 안 된다. 눈화장인 아이라인과 마스카라는 갈색과 검은색을 사용하고 매니큐어는 반드시 바르도록 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상시적으로 승무원들의 복장·용모를 점검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승무원인 박영희(가명·33)씨는 “승객들도 누가 누군지 헷갈려할 정도로 승무원들의 외모는 인형처럼 똑같다”며 “용모가 너무 중요하다 보니, 나이가 더 들어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든다”고 했다. 권수정 공공운수노조 아시아나항공지부장은 “승무원은 승객에 대한 서비스와 기내 안전 등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직인데, 머리 모양이나 귀고리 크기 등 과도한 규제는 업무 연관성도 낮고, 이런 규제가 반드시 서비스의 질을 올린다고 볼 수 없다”며 “오히려 승무원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회사의 복장과 용모 규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내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오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맞춰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쪽은 “유니폼의 경우 ‘승무원 이미지와 바지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디자이너의 판단을 존중해 바지를 만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또 용모 규정에 대해서도 “다른 항공사나 호텔 등 서비스업계 기준과 유사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대한항공의 경우는 용모 규정에 더해 승무원 채용 때 키가 162㎝ 이상인 사람에게만 지원 자격을 주고 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비행기 짐칸이 좌석 위에 있어 승객의 짐 정리를 돕기 위해서는 키가 162㎝ 이상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미 2006년부터 케이티엑스(KTX) 여승무원과 경찰 등의 채용 시 키를 제한하는 것에 대해 “평등권을 침해한다”며 폐지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한항공과 달리 아시아나항공은 이런 이유로 2008년부터 채용 때 키 제한을 삭제했다.

 

김현미 연세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우리나라가 항공산업을 시작할 때 서구 남성들이 주요 고객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여승무원에 대해 동양의 미를 강조한 순종적이고 단정한 이미지를 중요한 콘셉트로 잡아 강하게 통제해왔다”며 “이를 계속 고수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여승무원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