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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료

[세상 읽기] 차베스 죽음에 대한 복기 / 김현정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1.

등록 : 2013.03.20 19:17 수정 : 2013.03.20 19:17

[한겨레신문]

김현정 정형외과 전문의

지구 반대편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들려왔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힘든 투병 중에 병마를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타계했다는 내용이다. 2011년 6월 암 진단을 받은 지 겨우 1년9개월 만의 일이다.

 

자세한 병명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알려진 바는 그가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네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계속해서 화학치료와 방사선치료 등을 받았으며 완치와 재발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사망 원인은 암 때문이 아니라 암 치료에 따른 면역 억제에 의한 합병증으로 심각한 호흡기 감염을 앓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주도해온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정치적 해석은 다른 전문가들에게 맡기자. 다만 의사의 시각에서 이 뉴스에 드러난 치료과정을 복기해볼 때 몇 가지 떠오르는 아쉬움이 있다.

 

조심스럽게 드는 생각은 치료에 과잉은 없었나 하는 점이다. 2011년 8월1일 차베스는 삭발을 한 채 언론 인터뷰에 등장한다. 암 치료를 위한 화학요법 때문에 머리칼이 빠져서 밀어버렸다고 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대목을 덧붙인다. 검사 결과 더는 악성 세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예방 차원에서 두 차례 더 화학요법을 받을 것이라고.

 

항암제를 이용한 화학치료란 내 몸에 핵폭탄을 투하하는 것과 같다.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 아군까지도 모두 공격하는 전략이다. 단순히 머리칼이 빠지는 정도가 아니라 내 몸에 있는 정상적인 좋은 세포들까지도 죽거나 기진맥진이 된다. 의당 면역이 떨어지고 체력이 고갈되고 그 어느 것에도 저항할 힘을 잃고 만다. 그래서 간단한 감염도 중병이 된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다른 가정을 해보자. 만일 차베스가 암을 진단받고도 별다른 치료를 받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저 약간의 완화치료만 받았더라면 혹시 더 오래 살지는 않았을까? 몇 달을 기도에 호스 박힌 채로 침대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가 유언도 제대로 못하고 죽지는 않지 않았을까? 또한 살아 있는 시간을 좀더 활동적으로 보람있게 보낼 수 있지는 않았을까?

 

오래전 전립선암을 진단받았던 어느 은사님 생각이 난다. 그는 뛰어난 내과의사였고 우리나라에서 으뜸가는 대학병원의 원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선택은 암에 대한 모든 치료의 거절이었다. 그러고는 당시 추진하던 자신의 숙원사업인 새 병원 건축을 위해 계속해서 혼신의 힘을 쏟아부었다. 열중해서 청사진을 설명할 때의 그의 모습이란 마치 어린아이처럼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몇 해가 지나고 그는 마지막에 약간의 진통제를 받은 것 외에는 끝까지 평소처럼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그 후 그가 꿈꾸던 병원은 성공적으로 완공되었다.

 

차베스에게도 완수해야 할 과업이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더욱 치료와 생존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불태웠는지 모른다. 죽는 순간까지도 ‘나는 죽고 싶지 않다’고 속삭였다고 전한다. 암에 대한 그의 선택은 적극적이고 포괄적인 총공격이었다. 수술과 화학요법과 방사선, 육해공 모두를 동원해서 쏟아부었다. 적군을 섬멸했다는 검사결과가 나왔을 때에도 멈추지 않고 확인차 두 번 더 핵폭탄을 쏟아부었다. 결과적으로 ‘치료는 성공했는데 사람은 죽었노라. 최정상급 의사 일당이 이 사람의 생명을 재촉했노라.’

 

트위터 계정에 남긴 그의 마지막 메시지에는 ‘나는 여전히 신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의사와 간호사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뜨겁다. 차베스 뉴스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 질병과 의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오늘도, 심고 있던 한 그루 사과나무를 계속해서 심겠다.

 

김현정 정형외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