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률·이호준 기자 mypark@kyunghyang.com
2월 한 달간… ‘저소득자 지원’ 취지 어긋나
ㆍ대출과정서 상환능력 심사 없애 부실 우려
정부가 2월 한 달간 고소득 자영업자에게도 서민 금융상품인 ‘햇살론’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대출 한도는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확대했고,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전액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영세 자영업자’를 지원한다는 햇살론 취지와 맞지 않는 데다, 대출된 자금도 ‘서민 지원’으로 분류돼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대출과정에서 상환 능력 심사를 생략해 햇살론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31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중소기업청의 ‘설 명절 전후 자영업자에 대한 햇살론 특별지원 시행’ 공문을 보면 중기청은 신용보증재단에 ‘저신용자 연간 소득 금액 제한요건(연 4000만원 이하)’을 생략해 햇살론을 대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소기업청이 신용보증재단에 보낸 공문.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저신용 자영업자라도 연간 소득 4000만원 이하에 대해서만 대출할 수 있다. 국세청에 신고하는 연간 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자영업자는 ‘영세하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자산관리공사의 전환대출 상품인 바꿔드림론도 연간 소득 4000만원 이하인 사람으로 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중기청은 또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상환 능력을 심사하지 말고 대출 계획서를 제출하면 3000만원 한도에서 전액을 지급하라고 요청했다. 지금은 상환 능력을 평가해 2000만원 이내에서 차등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특별지원은 ‘사업을 하고 싶은데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을 돕기 위한 지원’이라는 서민금융의 당초 취지와 다른 것이다. 지역신용보증기금 관계자는 “대출기준을 이렇게까지 완화해준 적이 없다. 정권 말기에 선심이나 쓰자는 것 아니냐”며 “최소한의 심사도 하지 말고 대출을 해주라는 것이어서 연체율이 크게 높아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햇살론은 신용보증재단이 95% 보증을 서고 저축은행, 농·수·신협, 새마을금고는 5%의 책임만 진다. 대출 금리가 연 10% 안팎이어서 이자를 한 번만 받아도 금융회사의 부담은 없다. 문제는 보증을 선 신용보증재단이다. 부실이 생기면 재단의 자금으로 부실을 막아야 하는데 연체율이 상승해 출연금이 소진되면 대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작 지원이 필요한 영세 자영업자는 햇살론을 이용할 수 없다. 지난해 말 현재 햇살론의 연체율은 9.9%로 4대 서민금융 상품 중 가장 높다.
은행권도 햇살론 기준 완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한 시중은행 지점장은 “통상 연소득이 4000만원을 넘는 자영업자는 시장에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며 “서민금융 체계를 건드릴 것이 아니라 다른 정책자금으로 설 지원을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햇살론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가 비슷한 서민금융 상품인 새희망홀씨대출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원과의 실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햇살론 대출 확대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지난해 햇살론은 6109억원이 대출돼 새희망홀씨대출(1조9897억원)의 절반에 그쳤다.
금융위 관계자는 “설 같은 대목에서는 (고소득) 자영업자라도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유동성이 부족할 수 있어 한시적으로 풀어준 것”이라며 “2월 한 달 동안 120억원 정도가 더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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