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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사행산업, 범인은 정부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7.

등록 : 2013.01.27 11:38 수정 : 2013.01.27 13:56

연금복권의 흥행 돌풍으로 2011년 복권 판매액이 처음으로 3조원을 넘었다. 2012년에도 성장세가 이어져 사행산업의 지나친 성장을 막는다는 정부 정책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금복권520의 추첨 모습. 한겨레 박미향 기자

 

 

[특집]

 

 

사행산업 가운데 수익률  가장 높은 복권, 2년 연속 복권 총량 규제 넘기며 호황 누려…
‘고통 없는 세금’ 걷어가는 정부, 그나마 공익사업 지원 비율 지키지 않고 기득권 기관에 편중 지원

 

 

복권은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공익 목적을 위해 예외적으로 허용한 사행산업이다. 카지노·경마·경정·경륜·소싸움 등이 사행산 업에 속하며, 정부는 매년 이들의 매출 총량을 정한다. 지나친 성장 을 막기 위해서다. 2012년 정부가 정한 복권 매출 총량은 2조8753억 원. 그런데 실제 복권 매출액은 3조1859억원이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했을까?  

 

강제 아닌 권고, 복권 발행 한도액

 

복권 발행은 기획재정부 산하 복권위원회(이하 복권위)가, 사행산업 규제는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가 맡는다. 연말이 다가오면 두 기관은 신경전을 벌인다. 2012년 11월 복권위는 복권 매출 총량을 1560억원 늘려달라고 사감위에 요청 했다. 판매 추이를 봤을 때 복권 매출액이 3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감위는 “국민이 이해할 만한 건전화 조처가 없다”며 증액에 반대했다. 그러고는 ‘매출 총량을 준수하라’고 권고했다. 한 달 뒤 복권위는 1∼11월 복 권 매출액이 2조9129억원으로 집 계됐다고 발표했다. 사감위가 정 한 매출 총량을 이미 400억원 가 까이 초과했다는 선언이다. 어차 피 한도액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니 이를 수정하라고 재차 요구했 다. 결국 2011년에 이어 2012년에 도 복권 매출액이 3조원을 돌파 했다.

 

2011년에도 복권 매출액(3조 805억원)은 한도액(2조8046억원)을 2759억원이나 초과했다. 새로 나온 연금복권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탓이다. 500만원씩 20년 동안 당첨금을 지급하는 형식이 노후를 걱정하는 시대와 맞아떨어졌다. 복권 매출액이 급증하자 사감위는 2011년 12월 ‘로또의 발매 차단 제한액 설정’을 권고했다. 복권위가 복권 판매를 대폭 줄이거나 사실 상 중단하라는 뜻이다. 복권위는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다. 복권 발 행 총액을 오히려 2조8천억원에서 3조1천억원으로 늘려버린 것이다.

 

사감위가 정한 한도액은 강제 규정이 아니다. 권고 사항이다. 매출 총량을 넘으면 이듬해 한도액을 줄이거나 도박 중독 치유 등을 위한 분담금을 증액하도록 조처할 수 있을 뿐이다. 2011년 복권 매출 초 과로 기획재정부가 낸 분담금은 5억3900만원. 주판알을 튕겨보면 복권 매출 한도액을 2012년에 다시 초과한 게 남는 장사였다.

 

게다가 매출 총량 한도액을 ‘합법적으로’ 폐지할 길도 열렸다. 사행 산업 판매 총량에 예외를 적용하기로 한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개정시행령이 2012년 11월에 도입됐다. 이번 시행령에는 사행산업 업 종별 유병률(특정 집단에서 중독자가 차지하는 비율)과 매출 총량 조 정이 어려운 업종의 특성을 반영해 매출액 적용에 예외를 두겠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런 조건에 맞는 업종은 복권과 스포츠토토 다. 2010년을 기준으로 복권과 스포츠토토의 유병률은 각각 20.3% 와 35.5%로 사행산업 중 1·2번째로 낮았다. 반면 경륜(76.7%)·경정 (79.7%)·카지노(85.6%)는 80% 안팎으로 높은 수준이다.

 

예외 적용을 의결할 사감위는 복권 매출 총량 제한이 필요하다는 태도다. 복권이 다른 사행산업으로 통하는 관문이라고 판단해서다. 사감위와 한국갤럽이 2012년 4월 성인 310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한 결과, 10명 중 7명(72.9%)이 ‘복권을 산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복권을 구매하며 사행 활동을 시작한 이들 가운데 20.9%가 오 락형 온라인 게임에, 6.0%가 경마에, 2.2%가 사설 경마 등에 빠져든 것으로 나타났다. 호기심에 복권을 샀다가 다른 사행산업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는 뜻이다.

 

하지만 복권위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복권이 사행사업이 아닌 오 락산업으로 분류되는데다 복권 수요가 많아 매출 총량제가 유명무 실하다고 강조한다. 또 복권 판매가 증가하면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지원에 쓰이는 복권기금도 함께 늘어나 복권 호황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고 한다. 1천원짜리 복권을 사면 이 중 510원은 당첨금이고 90 원은 사업비, 400원은 저소득층 지원사업 등에 쓴다는 것이다.

복권의 수익률은 40%로 사행산업 가운데 가장 높다. 이 수익금(복권기금)은 정부 재정으로 들어간다.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소득세·법인세 등을 높이려면 조세 저항이 격렬하지만 복권 구매자는 40%의 세금을 쾌척하니까 말이다.

법정 배분은 도대체 뭔가?

946호 복권의 매출/지출 구조

 

 

‘절반의 진실’이다. 복권의 수익률은 40%로 사행산업 가운데 가장 높다. 이 수익금(복권기금)은 정부 재정으로 들어간다. 복권을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소득세·법인세 등을 높이려면 조 세 저항이 격렬하지만 복권 구매자는 40%의 세금을 쾌척하니까 말 이다. 복권기금은 2002년 로또복권이 탄생한 이후 급등했다. 2002 년부터 2011년까지 조성된 복권기금은 약 12조원으로, 1969년부터 2002년까지 조성된 기금액(약 1조7천억원)의 7배나 된다.

 

복권기금의 사용처는 다시 법정 배분 사업(35%)과 공익사업(65%) 으로 나뉜다. 법정 배분 사업은 과학기술진흥기금 등 10개 기금 및 기관에서 나눠갖고 나머지 65%는 저소득층 주거 안정, 국가유공자 복지 등 공익사업에 사용된다. 여기에 몇 가지 ‘꼼수’가 있다.

 

첫째, 법정 배분은 기득권을 보장하려고 만든 사업이라는 점이다. 국가재정의 사용처는 재정 운용의 우선순위나 그 타당성을 따져서 심사하고 선정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법정 배분은 1999년 복권 체계로 통폐합되기 이전에 과거 발행기관의 시장점유율을 기준으로 정해졌다. 이후 독자적인 재원 조달 수단이 생기거나 성과가 저조한 사업으로 판명나도 그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다.

 

둘째, 35(법정배분) 대 65(공익)라는 비율마저도 실제로는 지키지 않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12년 6월 ‘복권기금 운영과 복권사업 운영체계의 문제점과 개선과제’ 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기존 복권 발행기관의 기득권을 과도하게 보장하며 복권기금을 배분한다. 국민주택기금은 법정 배분 대상이지만 매년 공익사업에서도 배분 몫을 챙긴다. 그 결과 법정 배분 대상으로서 35%의 수익금 한도에서 배분받아야 할 국민주택기금이 그 한도를 벗어나 평균 46.4%를 배 분받고, 특히 2008년에는 전체 복권기금의 60% 가깝게 얻었다.” 그 결과 소외계층에 대한 복지사업 등 공익사업에는 법 취지(65%)와 달 리 복권 수익금의 30%도 돌아가지 않게 됐다.

 

국민주택기금 배분 비율 법제화

 

곽채기 동국대 교수(행정학)는 복권기금 운용 발전 정책토론회에 서 법정 배분 개정안을 제안했다. “복권기금의 차별성, 운용 효율성 을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법정 배분을 폐지하고 공익사업으로 전환하 는 게 바람직하지만 실현 가능성을 위해 차선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방법은 법정 대상 사업의 일부를 삭제하고 국민주택기금 배 분 비율을 법제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법정 배분을 25%로 축소하 고 지원 대상 일부를 공익사업으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