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운데 정부가 전부터 하려던 사업을 마치 자기가 한 일인 양 과시한 내용도 없지는 않지만 힘 좀 쓰는 의원들이 국가 차원의 예산 배정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끌어다 쓰는 정부 돈이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국민은 여야가 지난 1월 1일 새벽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막판에 여야 실세(實勢)들과 예결위원들의 지역구 민원 예산 5574억원을 슬쩍 끼워 넣은 것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의원들이 유권자들에게 돌린 자료를 보면 그건 마지막 단계에서 숫자를 조정할 때 추가로 늘린 금액일 뿐이고 그보다 몇 배 많은 규모의 지역구 예산을 이미 묻어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회가 올해 예산을 얼마나 무원칙하게 처리했는가는, 북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국방 예산을 2898억원 줄이고, 여야가 한입으로 복지 공약 실천을 말하면서도 소외 계층에게 진료비를 지원하는 '의료 급여' 예산을 2824억원이나 삭감한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국회가 국민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근본 이유가 의사당 내 폭력에만 있는 게 아니다. 국회가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도 없이 단세포(單細胞)처럼 행동해온 탓이 폭력 행위에 못지않게 크다. 국민의 존중을 받지 못한 국회가 대통령과 행정부의 존중을 받을 리 없다. 우리 국회와 정당, 정치의 위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국회는 2013년 예산 처리 과정을 엄격히 조사해 국민에게 그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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