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전자답게 핵심 이슈를 끝까지 물고 늘어져라
대선 투표일을 보름 남긴 지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치열한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초반전에선 문 후보가 밀렸다는 게 중평이다. 여론조사에서도 3~5%포인트 뒤진다. 안철수와의 단일화가 매끄럽지 않았던 탓에 컨벤션 효과도 누리지 못했다. 관전자로선 두 팀의 전력이 팽팽해야 재미있는 법. 특정팀에 대한 비판이나 훈수는 삼갈 일이지만 관전평까지 못하란 법은 없을 터.
문재인 진영의 선거운동은 국외자의 눈으로도 답답하기 짝이 없다. 이 사람들 과연 전략이 있는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우선 캐치프레이즈부터. 박근혜 진영은 '준비된 여성 대통령'을 들고 나왔다. 현수막에서 유세차량, 선거벽보까지 일관된 콘셉트이다. '준비된'은 왕년의 김대중 후보 구호를 표절(?)했다 해도 '여성 대통령'이란 함의는 심상한 게 아니다. 남녀 평등 분위기 속에서 페미니즘에 세례받은 20~40대 여성의 주목을 끌게 돼 있다. '박 후보는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이라고 설건드렸다가 역풍을 맞았던 민주당으로선 반박 논리도 마땅찮다.
문 후보 쪽은 '사람이 먼저다'와 '새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란 구호를 번갈아 쓴다. 두 구호가 뒤섞이니 유권자의 뇌리에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함의조차 추상적이기 짝이 없다. 시집 제목이라면 몰라도 '사람이 먼저다'가 어울리나? '새 시대'라니, 문재인의 새 시대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듣는 순간 귀에 꽂히지 않는 구호는 쓸모없다. 기자라면 투박한 대로 '정권교체! 문재인'이라 했을 거다.
첫 TV광고도 마찬가지. 박 후보는 커터칼 테러를 소재로 삼았다. 섬뜩하다는 반응도 있지만 메시지는 간명하다. 가냘픈 여성의 몸으로 테러의 위협에 맞서 가시밭길을 묵묵히 걸어왔다는 거다. 총탄을 맞은 부모의 죽음을 환기시키는 효과도 노렸다. 문재인의 콘셉트는 일상이다. 아내가 타준 커피를 마시고 맨발로 의자에 앉아 연설문을 읽다가 조는 장면으로 서민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였겠다. 그러나 느슨하고 밋밋하다. 국민은 국가 최고 경영자로서의 자질과 결단을 보려는 것이지 장삼이사의 일상을 들여다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정치 광고란 무릇 감성과 정치적 메시지가 잘 버무려져야 하는 법. 10년 전 히트한 '노무현의 눈물'에 비하면 실패작에 가깝다.
더 큰 문제는 문재인 측의 선거 프레임이다. 이것저것 조금씩 건드려 보다 마는 형국이다. '박근혜는 유신 독재의 잔재'라고 찔러봤지만 '문재인은 실패한 참여정부의 비서실장'이란 역공에 피장파장이 돼 버렸다. 현 정권의 실정을 들어 '이명박근혜'라고 공격하자 박근혜는 MB정권의 실정을 덩달아 비판하며 물타기를 해 버린다. 정수장학회니, 경제민주화니 '눈 먼 고양이 갈밭 매듯' 찔러보지만 창끝이 무디다. 이래선 제 딴죽에 제가 넘어갈 수밖에 없다.
선거 이슈는 백화점식으로 나열하는 법이 아니다. 흔한 비유대로 수십 개의 공을 한꺼번에 던져주면 하나도 받아내지 못한다. 공격논리를 정교하게 짜서 상대의 급소 한두 개를 골라 정확하게 타격해야 한다.
가령 경제민주화 이슈라면, 재벌들의 신규 순환출자만 제한하겠다는 박근혜의 공약과 기존 순환출자까지 해소하겠다는 자기 공약의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 김종인을 내친 박근혜의 후퇴를 집요하게 공격하는 게 효과적일 거다. 화급한 화두가 된 검찰 개혁도 마찬가지. 공직자비리수사처를 공약으로 내걸지 않은 박근혜 개혁안의 허구성을 까발릴 필요가 있다. '나는 한 놈만 골라 팬다'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의 대사처럼 한두 개의 이슈만 골라 TV토론이건 어디서건 반복적으로 물고 늘어지라는 거다.
문재인의 이미지는 중후한 신사다. 그것만 갖고는 안 된다. 도전자답게 치열하고 집요해져야 한다. 안철수의 입만 바라보는 게 선거 전략일 수는 없지 않은가. 3~5%포인트 차이는 만만한 게 아니다. 지금 같은 무기력으로 일관한다면 반전의 타이밍을 잡을 수 없을 게다. 지금은 프레임을 다시 짤 때다. 정신 차리고 이슈를 주도하지 못하면 진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유권자가 절반이 넘는 판에 안철수까지 주저앉히고서도 허망하게 진다면 관전자도 맥 빠질 것 같아 답답해 던져보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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