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환 시인
2013-04-19 [09:57:12] | 수정시간: 2013-04-19 [14:29:09] | 20면
- 자정 넘어 동광동 골목길에는
주정꾼들의 주정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백산기념관을 지키고 서있는
백산 생가의 모과나무는 한심해서
관절이 쑤시는 것도 참고 있었다.
단란주점에서 새어나오는 불콰한 풍악소리에
모과는 더욱 찌그러지고 멍이 들었다.
비린내와 돼지국밥 냄새를 풍기며
바닷바람 골목길을 빠져나가고
주정꾼들의 주정도 부스스 일어났다.
경광등을 반짝거리며 달려오는 구급차
기우뚱 지구가 기울어도
동광동 골목길은 태연하기만 하다.
-이상개의 '동광동 골목길'(시집 '파도꽃잎'·작가마을·2006) - 한때 관공서와 언론 기관들이 밀집해 있던 중앙동 인근 동광동 뒷골목에는 퇴근 무렵이면 술꾼들이 몰려와 기웃거렸다. 늦게까지 술집을 점령한 이들은 대개 화가이거나 문인이거나 음악을 하는 예술가들이었다.
카페가 없던 시절 그들에게는 통술집이 바로 문화예술의 토론장이 되었다.
그 골목을 문학의 거리로 지정한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개발로 인해 많은 원형이 훼손되고 예술인들이 떠난 거리 주점들은 영업이 되지 않아 하나둘 폐업하여 썰렁하기 짝이 없다.
간혹 일본인 관광객들이 거리를 메우지만, 독립운동을 하던 백산 선생의 기념관 앞을 활보하는 걸 볼 때 묘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기도 한다. 거리에다 이름만 멋지게 붙인다고 될 성질이 아닌 것 같다.
그때 주점 한두 집이 남아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지만, 예전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인간적 향기가 배어나는 거리에 사람이 모인다. 그곳에 가고 싶다.
강영환 시인
'부산 중구영도구 > 중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산 중구 부평동 마을버스 정류소의 시대를 열다. (0) | 2022.08.13 |
---|---|
[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2> 중구 ② (1) | 2013.08.08 |
영도다리 전시관 유치 중구·영도 신경전 (1) | 2013.04.19 |
[문태광의 BMW(Busan+Bus, Metro, Walking)] ⑦ 도시철도 1호선 부산역 '이바구길' (1) | 2013.04.18 |
이야기 공작소 <4-7> 부산 중구 스토리텔링- TF팀 방담 (0) | 2013.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