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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CINEMA)

“집에 가야지”에 혹하고 가르쳐준 대로 현장검증 [2013.03.18 제952호]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2.

“집에 가야지”에 혹하고 가르쳐준 대로 현장검증 [2013.03.18 제952호]

[표지이야기] 무죄와 벌 ① 허위 자백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본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 지적장애인임에도 신뢰관계인 참석 없어, 피의자 ‘기망’으로 자백 유도하고 유리한 증거 무시돼

 

최근 흥행에 성공한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누명을 쓴 6살 지능의 아빠가 감옥에서 어린 딸과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의 스토리를 이루는 핵심 골격은 ‘지적장애인인 주인공이 살인 누명을 쓰고 급기야 사형을 당하는 내용’이다. 재미와 감동 저편으로 수사 절차의 문제점을 꼬집는 내용이 눈에 들어왔다. 놀랍게도 실제 허위 자백 사례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기회를 빌려 영화에 나타낸 내용을 토대로 현실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수사 절차의 문제점을 짚어보려 한다.

 

장애인 보호규정 강제성 없어

 

영화에서 주인공 이용구는 평소 딸에게 사주고 싶어 하던 세일러문 가방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준 여자아이를 우연히 따라가게 된다. 그런데 여자아이는 앞서 뛰어가던 중 미끄러져 뇌진탕으로 죽는 사고를 당한다. 이때 아이를 구하려고 인공호흡을 하던 이용구를 제3자가 목격하고 그를 범인으로 오인한다. 경찰은 목격자의 그릇된 진술을 토대로 이용구를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 그 뒤 경찰이 이용구의 자백을 얻어내는 수사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나타난다.

 

첫째는 강압적 수사다. 수사의 구체적인 과정이 영화에서 세세히 표현되지는 않는다. 다만 이용구가 신문 과정에서 홀로 수사관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이 보인다. 지금은 수사 실무상 피의자가 수사관에게서 폭행을 당하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과거에는 폭행이나 고문이 피의자가 허위 자백을 하도록 만드는 주요 원인이었다.

 

오늘날 수사 과정에서 폭행을 찾아보기 어렵다 해도, 피의자가 허위 자백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피의자가 임의성(피의자나 피고인의 진술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이뤄지는 것)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신문을 받는다고 단정짓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고문이나 폭행이 없었는데도 피의자의 허위 자백이 발생한 대부분의 경우, 강압적인 분위기의 피의자 신문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미성년자나 지적장애인처럼 법에 무지한 사람들이 범행을 부인할 때 수사관이 중한 처벌의 가능성을 고지하거나, 무시하는 투의 반말을 하는 등 강압적 분위기가 형성될 가능성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낯설고 폐쇄된 공간에서 법적 권한과 지식, 권위를 가진 수사관을 홀로 대하는 것 자체가 자유롭게 진술하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따라서 수사 절차에서 이들을 특별히 처우하고, 피의자 신문의 투명성과 임의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가 직면한 과제다. 대안으로는 신문의 전 과정을 의무적으로 영상녹화 또는 녹음하는 방안 등이 제시되고 있다.

 

둘째로 장애인 보호 규정의 미준수다. 영화에서처럼 지적장애인 이용구가 신뢰관계인의 참여 없이 홀로 조사를 받게 되는 상황은 실제 여러 허위 자백 사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에게 치명적이다. 이들은 수사관의 질문을 정확히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의사표현 능력도 부족한 탓에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심리적 안정과 의사소통을 도와줄 신뢰관계인이나 통역의 도움이 절실하다.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은 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피의자가 장애로 인해 의사 능력이 미약한 경우 신뢰관계인을 동석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수사기관의 자체 규정(훈령)도 “장애 여부를 미리 확인하고, 의사소통을 도와줄 보조인을 참여시켜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규정들에 강제성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형사소송법 규정은 동석 여부를 수사기관의 재량에 따르도록 하고 있고, 훈령 규정도 준수하지 않았을 경우 수사관이 처벌이나 불이익을 받는다는 내용이 없다. 수사 절차에서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핵심적 내용이 실행되도록 담보할 만한 장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법규 개정으로 의무적 동석을 규정해 장애인 보호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기망, 허위 자백 가능성 70% 높여

 

현장검증은 허위 자백을 한 피의자가 ‘실체적 진실’로 되돌아오게 하는 ‘황금의 다리’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유명한 허위 자백의 사례가 된 ‘수원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현장검증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셋째, 신문 기법상의 문제다. 영화에는 현장검증 과정에서 수사관이 이용구에게 “빨리 끝내고 (집에) 니 딸내미 보러 가야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은 지적장애인이나 미성년자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집에 가는 것’이야말로 고통스러운 현재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요, 무죄로 석방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나 지적장애인의 허위 자백 사례들을 보면 이처럼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속아 허위 자백을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 중범죄를 저지른 피의자가 자백을 했더라도 집으로 돌려보내지는 일은 거의 없다. 오히려 진범으로 단정돼 처벌이 무거워지고 구금 기간이 길어진다. 즉, ‘집에 보내주겠다’는 수사관의 말은 명백한 기망으로 국가기관이 지켜야 할 법 집행의 청결함을 저해하는 행위인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규정된 자백배제 법칙에서 이런 수사 방법을 금지하는 건 이 때문이다. 외국의 한 연구에서는 이런 기망이 이뤄지면 허위 자백의 가능성을 70% 이상 높인다는 결과도 있다.

 

넷째, 현장검증의 문제다. 현장검증은 말 그대로 수사 내용을 범죄 현장에서 재현해 피의자의 자백이 진실한지, 수사에서 누락된 증거는 없는지 다시 검토해보는 절차다. 수사 절차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허위 자백을 한 피의자가 ‘실체적 진실’로 되돌아올 수 있게 ‘황금의 다리’ 역할을 해주는 게 현장검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현장검증은 수사관의 강압이나 지시 없이 피의자의 자유로운 의사가 철저히 보장된 상태에서 실시돼야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수사관이 이러한 원칙을 무시하고 이용구에게 특정 행위를 가르쳐주거나 지시하고 있다. 이런 방식은 허위 자백의 사례로 유명해진 ‘수원 노숙 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현장검증 영상에서도 발견된다. 진실을 발견하는 데 중요한 수사 절차인 현장검증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그저 피의자를 상대로 자백을 재현하는 요식행위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무시하는 문제다. 영화에서 이용구의 혐의 사실은 여자아이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혐의 사실을 부인하는 부검 결과(피해자의 목에 압력이 가해진 사실이 없다)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의견(뒷머리에 가해진 충격이 사망 원인이다)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무시된 것으로 나온다. 현실에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과학적 소견’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는 사례가 드물다. 그러나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유리한 정황증거 등이 무시되는 예는 허위 자백의 사례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엔 자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수사 관행도 영향을 끼친다. 허위일지라도 자백은 수사관에게 ‘수사 종결’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자백이 지닌 강력한 힘, 즉 ‘죄짓지 않은 사람이 자백을 할 리 없다’는 자백에 대한 강한 신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자백이 이뤄지면 그에 반하는 정황이나 증거는 무시되기 쉽고, 자백에 부합하는 수사의 종결을 향해 급진전되는 경우가 많다.

 

유죄의 편견을 가진 수사관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법리는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 외에 수사관이나 법관이 그만큼 무죄추정의 자세를 갖기 어렵기 때문에 강조되는 법리라고도 볼 수 있다.

 

여섯째, 유죄 편견(또는 유죄 선입견)이다. 현실에서도 수사관의 유죄 편견은 종종 나타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강조되는 건 ‘무고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가 형사법의 대전제이기 때문이지만, 어찌 보면 여기엔 수사관·법관이 그만큼 무죄추정의 자세를 갖기 어렵다는 현실적 고민이 담겼다고 할 수 있다. 수사 실무상 무죄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못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피의자나 피고인은 사건과 완전히 무관한 사람이 아니다. 목격자에 의해 범인으로 지목됐거나, 범행 현장에 있었거나, 피해자와 원한이 있는 등 갖가지 혐의 사실을 가졌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관은 기본적으로 피의자가 유죄일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 아래 신문을 하게 된다. 더군다나 피의자가 알리바이(현장 부재 증명)를 제시하지 못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진술을 한다면 수사관은 유죄의 심증을 굳힐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의사표현 능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이나 미성년자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는 죄가 없어도 일반 성인보다 쉽게 유죄로 추정될 취약성이 있다. 수사 절차에서 이들을 특별히 처우해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사건 해결에 대한 수사관의 열망도 잘못된 유죄 편견을 강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수사관 개인이 지닌 정의감 때문일 수도 있지만, 수사관이 받는 사건 해결에 대한 여론과 조직 내부의 압력 때문일 수도 있다. 일반인들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지만, 수사관들은 조직 내부와 여론의 압력에 자주 부담을 느낀다. 이런 압력은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전가되기 쉽다. 실제 사회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사건일수록 허위 자백의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렇게 유죄 편견을 가진 수사관이 일으키는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무엇보다 피의자의 무죄 가능성에 대한 공간을 남겨두지 않기 때문에 무죄의 가능성을 접하더라도 무시하고 유죄의 한 방향으로만 몰고 가는 수사를 진행할 위험이 크다. 이때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는 무시되고 불리한 증거만 탐색 대상이 된다. 결국 허위 자백이나 누명으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이는 수사가 형사 절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패로 귀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사건일수록 허위 자백 많아

 

영화 <7번방의 선물>을 통해 수사 절차상 문제점을 살펴봤다. 수사상 문제점들은 범죄자 처벌을 통한 사회정의 확립과 함께 수사기관이 풀어야 할 숙제다. 물론 수사기관이 직면하는 말 못할 고충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가 발전하는 속도에 비해 수사 절차상의 문제점은 충분히 개선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수사 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다는 비판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 적법 절차를 준수하고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실체적 진실의 발견’이라는 형사 절차 최고의 목적에 다가가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기수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경찰연구관·서울대 법학전문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