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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중국사

[책과 삶]중국사에 갇힌 ‘만주족’의 서사를 해체해 독립된 실체를 파헤치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1.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만주족의 역사
패멀라 카일 크로슬리 지음·양휘웅 옮김 | 돌베개 | 389쪽 | 1만8000원

만주족에 대한 서구인들의 인식은 ‘타타르’에서 시작해 ‘마지막 황제’로 끝난다. ‘타타르’는 12세기 무렵 중앙 유라시아에 살던 유목집단의 이름이지만, 유럽인들은 자유롭고 강한 야만족 이미지의 유라시아인들을 모두 ‘타타르’라 불렀다. 한편 1987년 개봉한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주인공 ‘푸이’는 일본 군국주의에 농락당하는 시대착오적이면서도 무기력한 인물로 그려진다. 이 극단의 이미지 사이에 만주족은 한때 압도적 군사력으로 중국을 정복했으나, 한족의 문화에 동화돼 몰락했다는 서사가 있다.

이 책은 만주족에 관한 익숙한 서사를 해체하고자 노력했던 역사학계의 노력이 담겨 있다. 미국 학자들을 중심으로 청대 내내 공문서로 사용된 만주어 사료를 발굴해 만주족이 한족에 동화되지 않고 독자적 정체성으로 제국을 통치했다고 밝히는 시도가 있었다. 크로슬리는 이에 더해 ‘만주족의 정체성은 청 제국의 흥망성쇠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모했다’는 독창적 주장을 내놓는다.

 

 

 

청이 건국되기 직전 만주족은 여진으로 불렸다. 이는 혈연과 언어를 기반으로 한 민족의 이름이 아니라 요동~두만강 일대에 사는 사람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었다. 이 지역에 사는 한인·조선인·몽골인도 여진에 포함됐다. 건주여진 수장 누르하치는 1616년 흩어져 살던 여진 부족들을 통일해 후금(훗날 청)을 건국했다. 이 과정에서 여진인들은 ‘팔기(八旗)’라 불리는 독특한 기마군대 체제로 편제됐다.

청의 정복과 팽창은 군사집단이던 ‘기인’의 개념을 계급적·민족적 개념으로 변모시킨다. 4대 황제 강희제에 이르러 청은 한인들이 일으킨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중국 대륙을 완벽하게 정복한다. 또 청에 협조적이었던 동몽골과 연합, 서몽골 지역을 복속시켰다. 제국의 지배자가 된 만주족들은 통치를 위해 중국의 관료제와 유교문화를 익히기 시작했다.

6대 황제 건륭제는 만주족의 문관화를 경계했다. 만주족과 한족, 몽골족을 철저히 분리해 각자의 언어와 문학을 익히도록 했으며 만주족들에게는 무예를 강조했다. 만주족이 민족의 이름으로 강조된 것은 이 무렵이었다. 팽창이 한계에 달한 제국에서 지배집단의 구심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민족의식은 피지배집단에도 발현된다. 만주족뿐 아니라 한족과 몽골족도 민족으로서 자아를 발견한다. 태평천국전쟁을 계기로 한족들은 만주족을 ‘부패한 이민족’ 즉 ‘중국인이 아닌 타자’로 규정한다. 오늘날 중국이 ‘만주’를 ‘타자’가 아닌 ‘중국’의 일부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시도와는 대조적이다.

 

이 책은 만주족에 대한 서구의 오리엔탈리즘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 사관이 만든 서사 역시 무너뜨린다. 만주족의 정체성이 형성돼가는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만주인의 역사는 일국의 역사로 편입시킬 수 없는 ‘독립된 실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