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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왜냐면] 전세계적 ‘FTA 도미노’ 낳은 ‘한-미 FTA’ / 김양희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6.

 

등록 : 2013.03.13 19:26 수정 : 2013.03.13 19:26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당시 웬디 커틀러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는 자주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향후 미국이 맺을 자유무역협정의 ‘골드 스탠더드’로 삼겠다”고 밝혔다. 미국식 경제 시스템을 한국에 이식하는 동시에 동아시아에 자유무역협정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입장에서 바라본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어떤 의미일까?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미국의 경제학자 볼드윈이 주장한 ‘자유무역협정의 도미노’를 세계적으로 촉발시킨 출발점이라는 점은 의외로 간과된다. 우리가 미국과 협상을 시작하자, 중국과 유럽연합(EU)이 우리에게 협상을 타진했다. 이는 일본이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A)은 물론이고 유럽연합과 협상을 펼치는 계기가 됐다. 그뿐 아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을 미국의 중국에 대한 포위이자 ‘아시아로의 전략축 이동’(pivot to Asia)으로 파악한 중국은 이에 맞서 한-중-일 자유무역협정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6(한국·중국·일본·인도·호주·뉴질랜드)를 아우르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맞불을 놓았다. 올 들어서는 세계 무역질서를 주도하는 미국과 유럽연합 간 협정 개시라는 국제무역의 지각변동의 한 요인이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은 동아시아가 지구적 차원에서 미국과 중국의 파워가 경쟁하고, 지역 차원에서는 일본과 중국 간 경쟁이 치열한 ‘이중의 파워 경쟁’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그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경제적으로 중국 의존도가 높으나 안보 면에서는 미국에 의존하는 ‘경제와 안보의 협력공간 불일치’가 나타난다.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한-중-일과 동남아국가연합이 외환위기 예방을 위해 2000년 체결한 역내 긴급자금지원제도인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등의 금융 협력은 ‘잰걸음’이지만 실물경제 협력의 대표적 수단인 자유무역협정은 더딘 ‘금융과 실물경제의 협력공간 불일치’도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이끈 자유무역협정 도미노로 인해 한국은 이제 한-중, 한-중-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은 물론이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합류까지 고민해야 하는 부메랑을 맞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최소한 한-중 자유무역협정을 매듭짓기 전까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합류에는 신중해야 한다. 경제에서는 중국에, 안보에서는 미국에 기대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미국 주도의 경제권역으로의 편입은 중국을 자극해 우리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힐 수 있다. 아울러 그동안 발효된 자유무역협정의 득실을 정확히 따져가며 이에 대한 원칙과 비전을 정립해야 한다. 발효 뒤 1년여에 불과한 미국이나 유럽연합과의 초대형 자유무역협정의 영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동시다발적으로, 더욱이 중국 등과 겹치기로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의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기업에도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한국 경제는 물론이고 동아시아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차대한 기점이었다. 이제 다시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파워 경쟁의 틈바구니에 처해 있다. 우리의 선택 여하에 따라 향후 경제는 물론 안보에까지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전환점에 서 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