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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신뢰회복 없인 희망 없어…‘야당 귀족주의’부터 깨라-2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15.

등록 : 2013.01.14 21:16 수정 : 2013.01.14 22:15

<민주 비대위, 대선 패배 '참회의 3배'>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앞줄 흰 장갑 낀 이)과 비상대책위원, 국회의원, 당직자 등 150여명이 14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탑에 참배한 뒤 ‘국민의 열화 같은 성원을 받고도 대통령선거에 패배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바닥에 엎드려 삼배를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② 어떻게 고칠 것인가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4일 국립현충원에서 “통곡의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 열화와 같은 국민의 성원에 부응하지 못했다. 민주당이 이제 거듭나겠다. ‘사즉생’의 각오로 거듭나겠다. 오직 국민만을 바로 보면서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겠다”며 참회의 삼배를 올렸다.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한 것은 12월19일이었다. 비대위원장을 선출한 것은 1월9일이었다. 비상지도부 선출에만 무려 3주가 걸렸다. 그동안 당내에선 ‘네 탓’ 싸움을 벌였다.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는 대선 패배의 책임이 대부분 민주당에 있고 지금의 지리멸렬한 민주당으로는 2017년 대선도 이길 수 없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올바른 처방에는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문재인 전 후보는 대통령 선거 다음날 캠프 해단식에서 패배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1% 부족했다. 후보의 부족함 외에, 친노의 한계, 민주통합당의 한계, 진영의 논리에 갇혀 중간층으로 확장하지 못한 것, 바닥 조직의 빈틈과 공중전에 의존하는 선거 역량의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야권의 대선 평가는 문재인 전 후보의 진단과 전혀 다르다. 우선 1% 부족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패했다는 데 의견이 일치한다. 왜 패했는지 이유도 아직은 잘 모른다. 예를 들어 50대 유권자는 투표율이 왜 높았는지, 박근혜 후보를 왜 더 많이 지지했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아파트’ 때문이라거나 ‘엔엘엘’(NLL)과 ‘이정희’ 때문이라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와의 단일화는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패배의 주요 원인이 선거 지형의 근본적 한계 때문인지, 선거 전략의 부재 때문인지도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① 패배원인 분석부터

 


집값대책 소홀·NLL·이정희…
단일화 효과 놓고도 논쟁중
선거지형 불리? 전략 부재?
실패 원인 찾는 게 ‘첫 단추’

 

하지만 대선 패배의 원인 중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명료해지는 두가지가 있다. 첫째, 신뢰의 상실, 둘째, 조직의 붕괴다. 신뢰와 조직은 정당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다. 민주당이 기본에서 밀렸다는 얘기다. 당연히 민주당 혁신의 처방도 여기서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하고, 둘째,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일 것이다. 

 

신뢰 회복에 대해 이낙연 의원(전남 담양·함평·영광·장성)이 12월30일 ‘제3세대 민주당을 준비해야 한다’며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제안을 한 것이 있다. 요지는 ‘정당 문화’와 ‘정책적 태도’를 환골탈태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인권, 복지 같은 진보적 가치를 충분히 중시하지만, 그러나 막말이나 거친 태도, 과격하고 극단적인 접근은 싫어하는 성향을 ‘태도보수’라고 한다. 고령화, 고학력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선에서도 민주당이 태도보수의 유탄을 맞지는 않았을까?”

 

“어떤 정치적 주장에 동의해도 내 생활에 나쁜 영향을 줄지도 모를 변화는 거부하는 성향을 ‘생활보수’라고 한다. 빈곤층은 세상이 확 바뀌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당장은 저녁에 먹을 라면을 걱정한다. 민주당은 그런 국민들께 신뢰받는 정책을 꾸준히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② 유권자 신뢰 회복

 


박 ‘약속 지키는’ 이미지 구축
민주당은 비전·정책 나열만 해
‘생활보수’ 유권자들 다 놓쳐
정교한 조세·복지정책 내놔야

 

민병두 의원(서울 동대문을)은 좀더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평화통일 세 분야에서 우리가 내놓았던 공약의 타당성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본격적인 논쟁을 할 필요가 있다. 노선이나 이념 투쟁이 아니라,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 그래야 ‘저 사람들 솔직해졌네’라고 국민들이 눈길을 주기 시작할 것이다.”

 

“유권자 분포가 달라졌지만 민주당에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지역구에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면 민주당이 당선되기 어려울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다. 아파트 친화적, 여성 친화적, 노인 친화적, 다문화 친화적 정책을 얼마든지 개발해서 내놓을 수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학)는 1월7일 대선평가 토론회에서 “박근혜 당선인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지난 5년 동안 지속적으로 구축했다. 따라서 그가 내놓은 공약은 ‘체화’된 것으로 유권자들에게 받아들여졌다. 민주당은 온갖 비전과 정책을 나열했다.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비쳤다”고 지적했다. 비전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해 지속적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제안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는 같은 토론회에서 “민주당의 정치 이념을 재구성해야 한다. 보수진영이 내세우는 자유시장, 경쟁, 안보에 맞서 일관성 있는 정치이념을 제시해야 한다. 연대, 통합, 공동체라는 거대담론을 넘어 민생의제를 강조해야 하며 정교한 조세정책과 복지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러 사람이 신뢰 회복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는 문화 및 태도의 변화, 맞춤형 정책 개발 및 우선순위 조정, 정치 이념 재구성 등은 시간이 꽤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다행인 것은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의 수도권 지역구 및 비례대표 초재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연구모임이나 정책모임을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다. 성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③ 무너진 조직 재건

 


과거에는 농성장이라도 제공
지금은 현장 소통 조직 ‘붕괴’
‘중산층·서민정당’ 계급성 찾고
중앙서 지역조직 재건 지원을

 

민주당 혁신에서 신뢰가 소프트웨어에 해당한다면, 조직은 하드웨어에 해당한다. 민주당의 전국 지역별 조직은 상당수가 198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화민주당을 창당했을 때 만들어졌다. 호남 지역을 제외하고는 호남향우회와 관련이 있는 곳이 많았다. 그러나 25년의 세월이 지나고 구성원들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호남향우회는 이제 조직으로서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풀뿌리 시민단체와 연계를 맺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냥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새누리당 일선 조직이 기득권 세력과 관변단체 중심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윤후덕 의원(경기 파주갑)“정당의 조직이 유지되려면 계급성과 지역성이 필요할 텐데, 민주당의 계급성은 완전히 없어졌고 지역성은 고립되어 버렸다. 진보정당이 건강하게 자라서 연대가 의미를 가질 때 집권 가능성이 열릴 텐데, 지금으로서는 아득하기만 하다”고 어두운 전망을 했다.

 

윤 의원이 지적하는 ‘계급성’ 실종은 야당으로서는 뼈아픈 대목이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을 내세웠다. ‘계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층’을 대변하겠다는 의지를 그렇게 드러낸 것이다. 그 뒤 집권여당의 지위를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차지했지만 계층을 대표하는 정체성마저 서서히 약해져 갔다.

 

우원식 의원(서울 노원을)도 비슷한 맥락에서 “‘야당 귀족주의’ 때문에 총선과 대선에서 패배했다. ‘생활정치’ 조직을 재건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은 월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 50대 이상의 계층에서 패배했다. 그런데 이 계층은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현장으로 찾아가야 한다. 과거 중앙당에는 노동위원회, 농민위원회, 인권위원회가 있었다. 지금은 그런 조직이 없다. 우리에게는 지금 ‘50대위원회’, ‘영세민위원회’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평민당 때 야당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에게 농성장이라도 제공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당사를 경찰이 지키고 있다. 중앙당과 지역위원회에 다시 현장과 소통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윤호중 의원(경기 구리)조직 재건을 민주당의 활로로 보고 있다.

“지역의 생활공동체는 의미가 없어져 가고 있다. 정당도 이제 거주지가 아니라 직장에 직장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서는 오히려 봉사나 취미활동, 캠페인을 중심으로 소통의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야 한다.”

 

민주당이 신뢰를 회복하고 조직을 재건하려면 127명 국회의원이나, 각 지역 위원장들의 개인기도 필요하지만 중앙당 차원의 기획과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따라서 지금은 비대위 체제 이후 들어서게 될 민주당 지도부가 매우 중요하다. 확고한 신념과 계획을 가지고 달려들어야 민주당 재건이 가능하다. 문희상 위원장과 민주당 비대위가 민주당 재건의 디딤돌을 놓을 수 있을까?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이런 제안을 했다.

 

“민주당 해체 여론이 있지만,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야권 전체를 보고 추상적으로는 ‘좋은 정당 만들기’를 해야 하고,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재편 또는 재건 운동’을 해야 한다. 괜찮은 정당 하나가 서야 나머지도 다 가능하다. 민주당은 좋은 대선후보를 당분간 잊어버려야 한다. 좋은 당 대표, 괜찮은 당내 리더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