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입력 2013.03.19 00:29 / 수정 2013.03.19 00:29
명절이면 보통 사과 한 상자쯤은 구입하거나 선물로 받는다. 이때 사과 꼭지가 붙어 있었는지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초등학교 시절인 1970년대 초 읍내 5일장에 가면 사과 궤짝에서 왕겨를 퍼 올리며 숨겨진 사과를 고르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는 요즘처럼 포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나무 상자에 왕겨나 톱밥을 넣고 사이사이 잘 익은 사과를 넣어서 팔았다. 당연히 사과 꼭지가 살아 있었다. 꼭지 없는 사과는 돌려 놓기 일쑤고 팔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농산물 유통과 포장기술이 발달하면서 왕겨 대신 사과 사이에 골판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골판지 위에 놓인 사과가 운송 중에 흔들리면서 꼭지가 옆의 사과에 자꾸 상처를 내 반품되는 비율이 높아졌다. 고심 끝에 농가에서 꼭지를 자르기 시작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기능과 재질의 포장 재료가 많이 개발됐다. 사과 꼭지로 인한 상처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산지에서부터 사과 크기에 딱 맞는 맞춤형 스티로폼에 사과를 담아서 출하한다. 고속도로, 운송차량, 물류장비 등 운송 인프라도 잘 갖추어져 있다. 사과 꼭지를 애써 잘라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지난해 농림부와 함께 한국농수산대학에 사과 꼭지 관련 연구를 의뢰했다. 그 결과가 흥미롭다. 먼저 300g짜리 사과를 상온에 일주일 두고 수분이 빠져 나가면서 무게가 줄어드는 과정을 지켜봤다. 꼭지 없는 사과는 무게가 4.8%(14.4g) 줄어든 반면 꼭지가 있는 사과는 2.5%(7.5g) 줄어드는 데 그쳤다. 사과 꼭지를 그냥 두면 저장 기간이 길어지고 식감도 오래 보존된다는 증거다.
‘사과가 빨갛게 익으면 의사는 파랗게 질린다’ ‘하루 한 알의 사과가 의사를 멀리하게 한다’는 유럽 속담이 있다. 『아침 사과의 혁명』 저자인 다자와 겐지(田澤賢次) 박사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사과가 우리 몸속의 방사능을 배출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사과의 효능과 우리 몸의 궁합을 따졌을 때 최적의 조건이 되는 것이 바로 껍질째 먹는 아침 사과라고도 했다.
농협은 2012년부터 사과 꼭지를 붙여 출하하고 있다. 이게 정착되려면 소비자의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일본은 꼭지가 떨어진 사과를 불량품으로 친다. 수박 꼭지로 맛과 신선도를 가늠하듯이 사과 꼭지에서 구매 기준을 찾는 스마트한 컨슈머가 되어보면 어떨까.
김 영 주 농협중앙회 회원경제지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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