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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 view &] 25년간 공들인 세종대왕의 세제 개혁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30.
[중앙일보] 입력 2013.04.30 00:53 / 수정 2013.04.30 00:53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전하, 공법(貢法)을 시행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대왕은 즉위 초기 세금제도 개혁을 놓고 신하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적이 있다. 토지와 관련된 전세(田稅)를 개혁하기 위해 새로운 세금제도를 도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풍흉의 정도를 파악해 세율을 정하는 기존의 손실답험법(損失踏驗法)으로는 세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았다. 토지를 조사하는 관리들의 성향에 따라 세금이 좌우되거나, 뇌물을 받고 낮은 세액을 책정해 주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세종은 공법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 백성들에게 이중·삼중고를 안겼던 세금제도를 개혁하고자 했다. 토지의 비옥도와 지역별 일기에 따라 국가에서 정한 일정액을 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이러한 세금제도 개편을 단기간에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시험에 ‘공법의 개선책에 대해 논하라’고 출제해 의견을 들었다. 또 당시 조선 인구의 4분의 1가량인 17만여 명의 신민(臣民)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결국 세종은 25년에 걸쳐 공법의 정당성과 올바른 제도 정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수렴했다. 긴 시간에 걸쳐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완성된 공법 체계는 이후 왕조의 기본 조세제도로 자리 잡아 조선 초기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임원 보수 공개 등 경제민주화 관련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감면 축소 등 조세 관련 논의들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복지 확대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면서 전면적인 조세 개편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많다.

 하지만 조세 정책은 국민의 재산권과 기업 경영에 직결된 문제인 만큼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 정치적 잣대나 즉흥적인 아이디어로 밀어붙이게 되면 잦은 수정과 보완으로 누더기 세제가 되고, 오히려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프랑스 정부가 연소득 100만 유로 이상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최고 75%의 세율을 부과하는 무리한 조세 정책을 추진하자 부작용이 잇따랐다. 국적을 포기하고 해외로 떠난 부자와 기업인이 적지 않았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따라서 조세 정책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심도 있게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저출산·고령화에 대비할 수 있는 큰 틀의 조세 정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업들에도 조세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업이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안정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조세 감면, 인센티브 제공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경기 침체를 극복하고 성장 동력을 확충하기 위해 기업 친화적인 조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본국으로 돌아오는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해 이전 비용 세액공제(20%)를 신설했고, 중국도 올해 들어 기업들의 연구개발에 대한 세제 지원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12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전체 조사대상 144개 국가 중 19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조세의 범위와 효율성’ 분야에서는 108위에 머물러 있다.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우리의 조세 환경이 취약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최근의 대내외 경제 여건은 결코 녹록지 않다. 잠재성장률은 3%대까지 추락했고 글로벌 경기는 회복이 지연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국민이 공감할 수 있고, 기업 활력을 제고할 수 있는 조세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집사광익(集思廣益)이라는 말이 있다. 여러 사람의 생각을 모아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뜻이다. 세종대왕의 조세 정책처럼 오랜 시간을 가지고 철저히 준비하고, 민주적인 논의를 통해 형성된 정책이 수립되고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