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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성범죄 중독’ 김길태가 수차례 감옥행에서 배운 거라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8. 25.

등록 : 2013.08.23 19:04 수정 : 2013.08.25 14:11

 
소년범이었던 피의자 김길태씨는 성인이 되어서도 범죄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건 전후 빈집을 떠돌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이 사건은 재범이라는 사슬을 끊기 위해 우리 사회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2010년 3월 11일 오후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이아무개양의 주검이 발견된 물탱크 근처의 어느 빈집.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토요판]
표창원의 죄와벌
<28> 김길태 사건
‘범죄소년’들에게 사죄할 기회를 갖게 하자

 

2010년 2월24일 저녁
부산에서 한 소녀가 사라졌다
경찰은 납치로 보고 수사 착수
실종 2주 만에 범인 잡았지만
소녀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범인 김길태는 중학생 때부터
폭력 혐의로 경찰서 들락거렸고
성범죄로 여러 번 감옥 갔지만
적절한 치료나 교육 못 받은 채
다시 사회 속으로 방치됐다

 

 

2010년 1월23일 새벽, 부산시 사상구 덕포동에 있는 주택가 골목길에서 귀가하던 20대 여성이 괴한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괴한은 피해 여성을 인근 건물 옥상으로 납치한 뒤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고 성폭행한 뒤 가까운 주택 옥탑방으로 끌고 가 다시 성폭행하며 8시간 뒤에야 풀어줬다. 피해 여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 옥탑방이 성폭행 범죄를 저지르고 8년간 수감되었다가 몇달 전 만기 출소한 33살의 전과자 김길태의 주거지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김길태를 특수강간 혐의로 수배했다. 주민들은 이런 불길한 사건이 주변에서 발생했고, 여성과 아이들을 노리는 위험한 괴한이 인근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실종 사흘 뒤에야 공개수사로 전환한 경찰

 

2010년 2월24일 저녁 7시7분, 엄마와 3분간 전화통화를 한 것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이아무개(당시 13살)양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이후 이양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밤 9시께 귀가한 엄마는 집에서 반겨주리라 기대했던 딸이 없어 집 안을 둘러보았다. 눈이 나빠 안경 없이는 눈앞 물건도 잘 구분 못하는 이양의 안경과 휴대전화가 방 안에 그대로 있었다. 이양의 부모는 밤 10시50분께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과 함께 다시 동네 이곳저곳을 필사적으로 찾아봤지만 이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온 동네에 알리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라도 딸을 찾고 싶었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집 아이 한명 없어졌다고 세상이 그런 야단법석을 떨어줄 것 같지 않았다. 밤이 깊어가는데도 딸에게서는 연락이 없고, 기다리는 부모의 애간장은 타들어가기만 했다.

 

다음날 부산 사상경찰서는 이양의 실종을 ‘납치’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살아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범인을 자극해 피해자를 해치게 할 우려가 있는 만큼 비공개수사 및 수색을 실시했다. 빈곤층이 사는 재개발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경찰은 이양의 실종이 성범죄와 관련되었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인근의 빈집을 수색했다. 한달 전 납치 성폭행 사건으로 수배중이던 김길태의 집에도 형사들이 방문했다. 김길태의 부모에게 자수를 권유하라고 부탁하고 돌아갔다. 형사들은 김길태가 자수하면 1월 특수강간 사건에 대한 처벌만 받으면 되지만 계속 도주할 경우,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될 수 있으니 자수하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얼마 뒤 김길태는 경찰에 전화해 자신은 살인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담을 넘어 다시 도주했다.

 

이때부터 수배중인 성범죄자 김길태가 이양의 실종에 관련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결국 실종 사흘 만인 27일, 경찰은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전국에 실종 아동을 찾는 공개수배인 ‘앰버경보’를 발령했다. 실종된 이양의 사진이 포함된 전단지가 전국에 배포됐다. 경찰도 동원 가능한 모든 인력과 장비를 덕포동 일대에 쏟아붓고 이양을 찾아 나섰다. 연인원 3만여명의 경찰관을 동원했고 헬리콥터로 항공수색도 실시했다.

 

한편 이양의 집이 있는 다가구 주택 빈방 라면봉지에서 김길태의 지문이 발견되었고, 이양의 집 안팎에서 운동화 자국과 침입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양에 대한 공개 실종수사 다음날인 28일, 경찰은 김길태를 용의자로 공식 규정했다. 김길태는 다시 친구 집에서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신은 ‘범인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는 도주했다. 이후 경찰의 대대적인 수사와 수색에도 불구하고 이양이나 김길태의 흔적은 묘연하기만 했다. 3월3일 오전, 이양 집 인근 빈집들을 수색하던 경찰관이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검거를 시도했지만 그 남자는 3m 높이의 뒷담을 뛰어내려 도주했다. 뒤따라 뛰어내린 경찰관은 발목을 접질려 뒤쫓지 못했다.

 

실종 열하루째인 3월6일 밤 9시20분, 이양의 집에서 50m 떨어진 집 옥상 물탱크에서 돌과 벽돌에 눌리고 석회 가루가 뒤덮인 주검이 발견되었다. 옷이 모두 벗겨진 채 손발이 묶인 여자 어린이, 실종된 이양이었다. 주검에서는 성폭행 흔적과 함께 범인의 체액이 발견되었다. 25일 오전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와 수색이 시작되었고 27일 공개수사와 함께 대규모 수색이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24일 저녁 7시부터 25일 새벽 사이에 납치와 성폭행, 살인 및 시체유기 범죄를 모두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3월8일에 나온 국과수의 디엔에이(DNA) 분석 결과 숨진 이양의 주검에서 발견된 체액은 수배된 김길태의 디엔에이와 일치했다. 3월9일 유족의 오열과 국민 모두의 깊은 슬픔 속에 영결식이 치러졌다.

 

 

9년 전 성추행 사건과 같았던 범행 수법

 

이양이 실종된 지 2주 만인 3월10일 김길태가 검거되었다. 이양의 집에서 300m 떨어진, 자신의 집 근처 빌딩 옥상에서였다. 김길태가 검거되자 25일 새벽 3~4시 주검 유기를 본 목격자도 나왔다. 범인 검거 전까지는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고 한다. 김길태는 목격자와 주검에서 발견된 자신의 디엔에이 증거 앞에서도 범행을 부인하거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을 회피하면서 버텼다. 검거 5일째, 거짓말탐지기 검사를 실시한다는 말에 겁먹은 김길태는 자신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했던 박명훈 경사를 찾았다.

 

이양이 김길태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박 경사의 말에 김길태는 고개를 숙이고 울음을 터뜨렸다. “죄송합니다, 다 제가 했습니다.” 수배자로 쫓기던 김길태는 돈이나 먹을 것을 찾아 이양 집에 몰래 침입했다가 집에 혼자 있던 이양과 마주쳤다. 상습 성범죄자로 이미 ‘성범죄 중독’ 상태였던 김길태는 불안한 수배자 상태였음에도 성폭행을 하기 위해 이양을 50m 떨어진 어느 무속인의 빈집으로 끌고 갔다. 이양은 극도의 공포심과 혐오감에 소리를 지르며 거칠게 반항했고 들킬 것을 두려워한 김길태는 이양의 입과 코를 틀어막고 목을 눌러 살해했다. 전혀 인적이 없는 새벽까지 기다린 김길태는 주검을 가방에 넣어 메고 나와 인근 옥상 물탱크에 넣어 유기했다.

 

잡히면 끝장이라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휩싸인 김길태는 그냥 두면 주검이 발견되고 자신의 흔적도 발견될 것이 무서웠다. 주변에 방치된 석회 가루를 가져다 주검 위에 뿌리고 돌과 벽돌을 주워 올려 덮었다. 김길태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자체는 자백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특히 “주량 이상으로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치밀한 주검 유기와 증거인멸 방법은 결코 만취한 자의 짓이라고 볼 수 없었다. 더구나 경찰에 쫓기는 극도로 긴장된 상황에서 이양을 납치한 그가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셨을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아마도 얼마 전 발생한 아동성폭행 사건 범인 조두순이 만취 상태였음을 내세워 12년으로 감형받은 사례를 염두에 두고 처벌을 줄이려는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길태의 문제는 조두순 등 다른 수많은 성폭력범죄자들과 마찬가지로 축적된 열등감과 욕구불만, 분노 등에서 비롯된 ‘폭력’ 욕구와 충동인 것으로 보인다. 김길태가 처음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도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의 싸움, 폭력이었다. 결국 여러 차례 폭력범죄 혐의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다가 19살 때인 1996년, 폭력 유죄를 선고받고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나오게 된다. 중학교 이후 지속적으로 일탈과 범죄 문제를 일으켜 온 김길태가 아무런 조치 없이 다시 사회로 방치된 것이다. 집행유예 기간이던 1997년 7월, 20살 김길태는 아홉살 여자 어린이를 유인해 성추행하다가 발각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는다. 3년 교도소 수감생활 동안 범죄 선배들을 만나 범죄 수법, 증거인멸 방법, 경찰 수사 피하는 법만 배우고 욕구불만과 분노, 사회와 사람들과의 이질감만 더 키운 김길태는 2001년 4월, 만기출소한 지 불과 한달 만에 길 가던 30대 여성을 납치해 친구 집과 자신의 옥탑방에서 10일간 감금하며 지속적으로 성폭행하다가 검거되었다.

 

도저히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김길태의 이러한 성범죄 폭주를 막을 제도나 장치는 여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김길태는 징역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09년 6월 출소했다. 당시 부산지법 판사로 재판에 참가했던 박성철 변호사는 김길태의 범행은 ‘살인 이상의 흉악한 범죄’로 ‘다시는 사회에 나와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했다. 김길태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중에도 다른 재소자들을 폭행하는 등 난폭한 행동을 일삼아 정신과 의사에게 정신감정을 받았지만 환청이나 환시, 정동장애, 인지장애 등 특별한 정신질환의 징후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충동 조절을 잘 못하고 분노가 많고 대화 등 대인관계에 서툴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인격장애가 의심된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추가 정밀검진이나 필요한 치료 조치, 혹은 재범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격리하는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2010년 1월23일 새벽 벌인 범행 수법도 9년 전 당시와 같았고 그 후 이양을 잔혹하게 살해했다.

 

피해자 고통 직접 듣는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

 

우리 사회에는 김길태가 청소년 범죄자였을 때나 지금이나 효과적인 청소년 범죄 대응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국가 형사사법제도 중에 가장 중요한 단계를 꼽으라면 아마 처음 문제를 드러낸 청소년 범죄자들이 더 크고 흉악한 강력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개입하고 차단하는 ‘소년사법’ 단계일 것이다. 아직 가치관과 세계관이 완전히 정립되지 않고, 범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굳어지지 않은 청소년기 범죄자 중 상당수는 적절한 개입과 처방만 주어진다면 교화하고 선도할 수 있다.

 

많은 나라에서 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대책은 사회 전체의 몫으로 받아들이고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통해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중 특히 주목할 것은, 가해 청소년이 자신 때문에 피해자가 겪은 고통에 대해 듣고 진심으로 사죄할 기회를 갖는 ‘회복적 사법’(Restorative Justice) 프로그램이다. 청소년 범죄자의 상당수는 자기 내면의 욕구불만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폭력이나 파괴, 폭주 등의 문제 행동을 하게 된다. 피해자가 입을 충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생각하려 하지도 않는다. 아직 민감한 감수성이 남아 있는 그들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제대로 직면하게 해주면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끼고 반성과 사죄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길태도 이미 성인이 되어 상습범죄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이 굳어진 상태에서도 자신이 살해한 여중생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보이며 참회했다.

 

우리 청소년 범죄 대응 시스템에는 이러한 가장 기본적이고 인간적인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이 도입되지 않고 있다. 과거 ‘소년원’으로 불리던 청소년 범죄자 수용기관을 ‘학교’로 바꿔 부르며 집체징벌 방식에서 교육으로 전환한 것은 크고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 대상자가 많지 않고 외부환경의 지원체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교육’도 받지 않고 방치되는 대다수 청소년 범죄자들이다. 사안이 경미하다는 이유로 보호관찰, 수강명령, 부모에 인계 등의 조치를 받고 사회로 되돌려 보내진 대다수의 청소년 범죄자들은 그들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받고 교정할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호관찰관 1인당 담당 범죄자 수가 평균 378명에 이른다. 미국 76명, 일본 53명, 영국 23명, 오스트레일리아(호주) 33명 등 외국에 비해 5~10배나 많은 범죄자를 관리해야 하는데, 그 많은 범죄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관찰해서 교화 선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외국에서는 많은 수의 보호관찰관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나 지역 경찰, 혹은 지역 사회단체들이 운영하는 수많은 청소년 범죄자 교화 선도 시설과 프로그램들이 운영중이다. 올바른 운전교육, 사회봉사, 독서지도, 직업교육, 스포츠 활동 등 청소년 범죄자들의 범죄 원인과 특성에 부합하는 다양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노력과 과정을 거치고도 성인 강력범죄자가 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징벌과 오랜 격리, 신원 공개 등의 제재가 가해질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