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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상속이냐 선물이냐’ 세습에 관한 궁금증 5가지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2.

 

등록 : 2013.01.13 15:15 수정 : 2013.01.22 09:10 

세습이란 참 묘합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드라마 같습니다. 분노하다가도 곧 샘이 납니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다가도 어느새 내가 주인공이 돼 있습니다. ‘죄’인지 ‘인지상정’인지도 헷갈립니다. 도대체 세습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독자와 지인의 궁금증을 모아봤습니다. _편집자

 

 

1. 올해 가을 결혼을 합니다. 부모님에게 손을 안 벌리려고 남자친구와 지난 2년간 전세금을 모아왔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선 부모님한테 수천만원을 지원받는 건 기본이더라고요. 이런 돈에는 세금을 안 물리나요?(고정효·31)

 

두 달 전 결혼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서울 강남에 전셋집을 마련하며 시댁으로부터 2억원을 받은 친구였습니다. 세금, 안 냈답니다. 나중에 시부모 노후자금으로 꼭 돌려드릴 거라는 다짐도 덧붙입니다. “지켜본다!”고 윽박지르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 한켠엔 이미 부러움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괜스레 분노의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이 녀석, 증여세를 적어도 2400만원은 안 냈습니다. 그러나 어디 제 친구뿐이겠습니까. 요즘 집값이 하도 비싸니 결혼할 때 부모에게 손 안 벌리는 자식을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부모가 사망하기 전 자식에게 준 돈은 당연히 증여세 부과 대상입니다. 현행법상 자식이 증여세를 물지 않고 부모에게 증여받을 수 있는 한도는 10년간 총 3천만원이 전부입니다. 이쯤에서 우리 철없는 자식들, 부모에게 “자녀 양육·교육의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따져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법이 정하는 부모의 도리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이&윤 세무회계컨설팅의 이민재 세무사는 “사생활비나 학비 지원, 결혼 축의금 등 사회 통념에서 벗어나지 않는 돈에 대해서만 비과세 항목으로 인정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 자식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유학비나 사업 투자금, 결혼자금은 10년간 총 3천만원이 넘으면 모두 10~50%의 증여세를 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도 다들 증여세를 안 내는 건 부모와 자식 간에 오간 돈을 과세 당국이 일일이 들여다보기 어렵다는 허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죠. 대통령 아들도 어머니와 큰아버지에게서 12억원을 증여받고 세금 한 푼 안 내려다 운이 나빠 들키는데 흔남흔녀야 오죽하겠습니까.

 

2. 9살, 7살 아들 둘을 둔 엄마입니다. 증여나 상속 문제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은행에 가면 자꾸 아이들한테 일찍 증여를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꼭 그래야 하나요?(강인희·35)

 

그림이 훤합니다. 금융회사들은 아마 이러겠지요. “미성년 자녀에게는 10년간 1500만원까지 세금 없이 증여가 가능하니 서두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어린이펀드 같은 금융상품을 쓱 내밀겠지요. 돈 많은 고객에겐 또 이럴 겁니다. “나중에 사망하고 나서 재산이 한번에 자식에게 상속되면 세율이 높아지니 살아 있을 때 미리 조금씩 증여해 절세를 해야 한다”고요. 상속세와 증여세는 금액에 따라 세율이 10~50%로 똑같이 올라가기 때문에 적은 금액으로 여러 번 나눠주란 뜻입니다. 그러곤 세무 컨설팅을 받으라고 속삭일 겁니다. 이때 주식으로 증여하면 나중에 주가 상승에 따른 차익까지 붙어서 일석이조라는 등의 증여 테크닉도 늘어놓을 테지요. 우리나라 미성년자가 보유한 주식이 2011년 말 기준으로 4조원이나 되는 데는 이런 마케팅도 작용했을 겁니다. 모두 법률·재무적으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선택은 부모의 몫이겠죠. 자녀에겐 ‘절세의 기술’보다 가르쳐줄 게 훨씬 많으니깐요. 땀 흘린 노동의 중요성과 정당한 세금 납부는 그 처음이겠죠.

 

3. 취업 준비도 제대로 안 한 친구가 최근 대기업에 입사했습니다. 친구 아버지가 임원으로 있는 회사여서 의심이 갑니다. 친구가 부럽긴 하지만 이래도 되는 건가요?(김지철·가명·28)

 

네, 안타깝게도 법률적으론 그래도 됩니다. 감정적으로는 신분 세습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재산을 제외한 대물림에 대해선 현행법에 관련 조항이 없거든요. 법무법인 이지스의 강민구 대표변호사의 설명입니다. “재산을 평가할 수 있을 때 상속이나 증여의 문제가 생긴다. 명성이나 권력은 금전적으로 평가가 안 되니 그에 관한 제재나 처벌도 안 된다.” 회사에는 분명히 개인과 고용계약을 맺을 자유가 있습니다. 인재의 기준이 회사마다 제각각이니 친구가 임원 아들이어서 뽑혔는지, 남다른 재능이 있어 뽑혔는지를 회사에 따져묻기는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렇다고 처벌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만약 친구 아버지가 인사담당자에게 금품을 주며 회유를 했다면 업무상 배임죄를 물을 여지가 있습니다. 또 아버지가 강제로 인사담당자를 협박한 결과라면 협박죄로 형사처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보건대, 그랬을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그러니 이제 마음 풀고 친구를 축하해주세요. 그리고 끼니마다 밥을 얻어먹는 등 친구를 100% 활용하세요.

 

4. 재벌의 경영권 승계는 사회적 지탄을 받습니다. 그런데 잘나가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을 자식이 이어받는

 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다 같은 ‘가업’ 아닌가요?(김석현·32)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가업은 ‘대대로 물려받는 집안의 생업’을 말합니다. 삼성그룹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외교관이 된 손녀나, 대박 족발집을 물려받은 손자나 똑같이 ‘가업’을 이어받은 셈이죠. 그러나 법률적으로 인정돼 여러 혜택을 받는 가업의 의미는 좀 엄격합니다. 법무법인 한중의 홍순기 대표변호사의 말입니다. “중소기업법에서 정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만 가업 상속을 인정해 상속세를 거의 면제해준다. 주로 제조업 중심이고, 유흥주점 등 일부 업종은 제외된다.” 아버지가 어렵게 일궈낸 중소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려다가 과도한 상속세 때문에 중소기업이 휘청거리는 부작용을 막으려는 조처랍니다. 그래서 정부는 부모가 10년 이상 경영해온 가업을 자식이 상속받아 승계하면 경영기간에 따라 최대 300억원까지 가업상속재산가액의 70%를 공제해주며 가업 승계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정 계층의 부의 대물림을 도와주려고 정부가 상속세 과세 기반을 흔드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제 생각이 궁금하다고요? 전 또 그저 부럽답니다.

 

5. 왕성교회처럼 세습되는 교회가 많은가요? 하나님께서 세습을 허락하신 건가요?(‘네이버’ 아이디 비공개)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검색어 ‘세습’을 쳐보니 유독 교회 세습에 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하나님이 세습을 허락하셨을 리는 절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에게 물어봤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게 아니라 교회 대형화의 부작용”이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개신교 장로로서 ‘기독교 국가’를 세우려 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 시대부터 한국 교회도 폭풍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교회의 세를 불리는 과정에선 모든 자원이 목사 한 명에게 집중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독재 대통령은 18년 만에 떠났지만, 독재 목사들은 30~40년 동안 줄곧 권위를 유지합니다. 이제야 다들 자식에게 물려주고 은퇴를 하려다 보니 교회 세습이 많아 보이는 거랍니다. 그러니 하나님에 대한 오해는 이제 그만 풀어주세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