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금융

[취재일기] 100엔당 700~800원 때도 이겨냈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30.
[중앙일보] 입력 2013.04.30 00:57 / 수정 2013.04.30 08:40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

엔저(低) 때문에 아우성이다. 자동차·가전·철강·조선 할 것 없이 엔저로 말미암아 가격 경쟁력이 한층 높아진 일본 기업에 밀리고 있다고 한목소리다. 하긴 엔화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다. 불과 1년6개월 전만 해도 100엔당 1500원이었는데 이젠 1130원까지 내려갔다.

 그렇다고 해도 뭔가 석연찮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이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일본의 경쟁자로 우뚝 선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조선산업이 부동의 세계 1위로 올라선 것이 바로 그때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이렇게 좋은 회사가 있는 줄 몰랐다”며 포스코 주식을 산 건 2005년이었다. 삼성을 세계 초일류 브랜드에 올려놓은 ‘보르도TV’는 2006년에 출시됐다.

 이렇게 한국이 약진할 때 원-엔 환율은 어땠나. 국내 조선업체들이 세계 1위를 구가했던 2000~2007년 평균 환율은 100엔당 968원이었다. 버핏이 포스코를 산 2005년에는 800원대, 보르도TV가 공전의 히트를 친 2006년에는 700원대까지 원-엔 환율이 내려갔다. 2008년 금융위기 후 1300~1500원을 오가던 때 글로벌 강자로 발돋움한 자동차 정도만이 다른 여건에서 성장했을 뿐이다.

 한국 기업들이 일본을 따라잡을 200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은 환율 덕에 콧노래를 불러야 할 수준이다. 물론 엔저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빠르기는 하다. 거기서 오는 고통이 결코 작지 않다. 하지만 일본 기업들은 더한 경우를 겪었다. 2008년 금융위기 앞뒤 6개월 새 원-엔 환율이 100엔당 950원에서 1550원으로 바뀌었다. 이후 사상 유례없는 엔고 시절이 계속되면서 무너진 일본 기업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버텨내고 지금 다시 전성기로 진입하는 기업도 많다. 도요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지금은 엔저 타령을 할 때가 아니라 혹독하기 그지없는 환율을 이겨낸 도요타를 배워야 할 때다. 그들이 해냈는데 우리라고 못할 리 없다. 지금보다 더 불리한 원-엔 환율 속에서 그들을 따라잡고 물리치기까지 한 것이 한국 산업 아닌가. 한국 기업 파이팅!

권혁주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