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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박희봉 칼럼] 엔저가 어때서?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30.

환율 재미보는 시대 이제 끝이 났다

'재주 넘는 곰' 벗고 위기가 기회 되려면 뼈와 살을 바꿔야

   
곳곳이 아우성이다. 이른바, 일본 중앙은행의 양적 완화 때문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해 내년 말까지 엔화를 마구 찍어낼 모양이다. 통화 남발은 엔화 가치를 떨어뜨리고 환율을 높여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수출이 늘어나면 성장과 함께 물가, 금리도 덩달아 올라 디플레 늪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원화의 가치는 급상승세다. 아베 내각 출범 이전 100엔당 1300원 이상이던 환율이 1120원대로 떨어졌다. 미국이 세 차례 양적 완화를 실시한 데다 일본도 가세하니 한국은 돈 가치가 오르게 된다. 우리 돈의 가치가 높아지면 환율은 거꾸로 내린다. 환율이 낮아지면 수출해서 받은 달러를 원화로 바꿀 경우 액수가 줄게 된다. 1995년의 악몽이 재연되고 있으니 기업들이 울상이 될 만하다.

한때는 우리도 일본 저환율의 덕을 톡톡히 봤다.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달러에 235엔 하던 엔화의 환율은 1년여 만에 120엔으로 떨어진 뒤 1995년에 이르러 79달러로 폭락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의 저환율과 낮은 국제 유가에 힘입어 전두환, 노태우 정부 때 호황기를 누렸다. 1980년대 말 달러화의 평가절화와 1995년 역플라자 합의로 인한 엔화의 폭락으로 우리는 IMF사태를 맞았다. 환율의 급변동은 폭발력을 갖고 있으니 경계해야 마땅하다.

IMF사태 때 고환율 정책으로 빠른 시간 내 위기를 극복했지만 국부가 대거 유출되는 피해도 입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수출 신장을 위해 인위적인 고환율 정책을 폈다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막대한 피해를 냈다. 시대에 맞지 않는 환율 정책을 편 탓이다.

박근혜정부가 아직도 고환율의 유혹에 빠져 있는 건 안타깝다. 낡은 레코드를 다시 틀고 있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성장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논할 때다. 미국이 일본의 손을 들어준 것은 다음 차례가 한국이란 의미도 된다. 위기니 뭐니 '뜨거운 철판 위의 메뚜기'처럼 방방거릴 게 아니라 냉정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물론 수출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대기업이야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겼고 환율 방어체제가 돼 있으니 우려할 바는 아니다. 수입 물가의 하락은 타격을 상쇄해 주니 환율 영향은 그만큼 제한적이다. 철강, 조선업 등 업종별로 타격을 받을 대기업도 있겠으나 시급하게 지원이 이뤄져야 하는 건 중소기업 부문이다. 중소기업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면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하나, 과거 환율을 비교할 때 지금이 위기인가 의구심이 간다. 엔저가 몰고올 피해는 생각보다 미미할 수도 있다. 인위적인 원화 절하나 통화 팽창 정책은 경제의 기반을 흔들 수 있으니 절대 자제해야 한다.

엔저가 무조건 나쁜 건 아니다. 우리 돈의 가치가 올라가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싸진다. 환율의 물가 민감도는 1에 가깝다. 환율 하락은 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니 내수 기업들은 혜택이 예상된다. 국민들은 상당한 덕을 본다. 물가가 떨어지니 숨쉬기에 낫고 해외 여행이나 송금도 어깨가 가벼워진다. 경제만 버틴다면 국민소득 향상은 덤이 된다.

어차피 우리 경제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 저환율 파동까지 겹쳤으니 당분간 금융시장이 출렁거리고 경기가 냉각될 가능성도 있다. 하나, 위기 때 시작하지 않으면 기회가 와도 잡기 힘들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위기를 기회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기업이든, 국가든 도약은 반드시 위기 뒤에 이뤄진다. 경제 전반에 걸쳐 뼈대와 살을 바꾸는 처절한 구조개혁은 그래서 필요하다. 원천기술의 확대와 대기업 투자 확대, 서비스업 등 내수산업의 선진화는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다.

이런 걸 이루려면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산업분야에 비용을 집중해 경제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는 게 화급한 과제다. 앞으로 10년을 내다보고 과거의 그림자를 걷어낸다면 또 한 번의 도약이 가능하다. IMF사태가 양에서 질로 성장의 틀을 변화시켰다면 이번 환율 위기는 압축 성장에서 균형 성장으로 이행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선진국이 되느냐, 중도 탈락하느냐는 오늘 이 시점,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