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산 중구영도구/동구

이야기 공작소 <3-5> 부산 동구 스토리텔링- 층계 없는 까꼬막길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15.

연탄가게 손씨가 쉬는 날은 산동네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3-01-14 19:36:17
  • / 본지 20면
   

부산 동구 초량동 수정동 일대의 산복도로 골목길에선 아직도 연탄 배달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의 연탄 배달은 소량 다건이 많다. 배달부들은 일년 내내 수레와 지게를 몸에 붙이고 산다. 산복도로는 이들이 피우는 온기로 시린 겨울을 지탱한다.

 

- 손씨는 산복도로 동네에 연탄을 배달하며 살았다. 오르막에선 몸집이 큰 부인이 앞에서 수레를 끌고, 다리를 저는 손씨가 뒤를 밀었다.

- "골목에 계단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까요?" 계단이 높고 많으면 손씨가 일하기에 열배나 힘이 든다. 손수레가 갈 수 없으면 져다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 집 앞에 계단을 만들지 마세요."집집마다 나서서 똑같이 주문했다. 인부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골목길은 결국 동네 사람들의 요구대로 계단 없이 밋밋한 경사를 이뤘다.


"손씨,연탄 서른 장만 넣어 주세요"

산 5번지 좁은 골목길 대문을 빼꼼 열고 내다보고 있던 아주머니가 연탄수레를 끌고 까꼬막을 오르는 손씨에게 배달을 부탁했다. 손씨는 산복도로 동네에 가게를 열고 줄곧 연탄을 배달하며 살았다.

"아니 백장이면 백장이지 서른 장이 뭐예요!"

그 집은 손씨에게 서른 장이라고 기억되는 집이다. 손씨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적은 수량의 배달을 위해 좁은 골목을 오르내리다 보면 쉽게 지치고 만다. 한 번에 많이 넣으면 배달을 자주 안해도 되기 때문이다. 서른 장이면 겨울에는 열흘, 여름엔 보름이면 동이 난다. 열흘 후에 다시 서른 장 배달 주문을 받을 걸 생각하니 괜한 짜증이 앞서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그럴 수 없는 노릇이다. 서른 장 집은 늘 그래왔던 단골이라서 짐짓 핀잔을 농담 삼아 던져 본 것뿐이다. 그녀도 손씨의 속내를 잘 알고 툭 쏘아 붙인다.

"돈 대로 넣어야지요."

손씨는 돈 대로라는 말에 힘이 빠진다. 산동네 배달은 늘 그랬다. 소량 다건. 그러기에 힘이 두배 혹은 그 이상 든다. 산동네는 가파르고 계단도 많고 골목이 좁아 지게가 행인들과 자주 부딪히곤 한다. 악조건 속이라 산동네 배달은 평지보다 30원 정도 가격이 높다. 배달료다. 힘든 산동네에서 서른 장은 배달감도 안되지만 손씨는 짜증내지 않고 기억해 두었다가 빼먹지 않고 배달해 준다.

배달료가 부담되는 사람들은 연탄을 직접 갖다 날랐다. 온 식구가 서로의 얼굴에 탄가루를 묻히며 장난도 치고, 세숫대야나 빨래판을 이용하여 몇 차례 왕래하며 운반했다. 손씨는 배달료를 받지 못해도 그렇게 연탄을 가져가는 사람들이 늘 고마웠다.

손씨 부부가 쉴 수 있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일 년 내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레와 지게를 몸에 붙이고 살아야 했다. 쉬는 날이라고는 비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이 전부였다. 부산에 눈은 거의 오지 않지만 대체로 10년 주기로 제법 내린다. 눈이 오면 산동네는 일상이 정지된다. 산복도로에 대중교통은 멈춰 서고 자전거나 수레도 다닐 수 없게 된다. 사람들도 주춤거리며 갈 뿐이다. 그래서 눈이 올 때는 배달을 중지한다. 다리의 불편함도 있겠지만 수레를 운행할 수가 없다. 쉬어도 마음은 편하지 못하다. 일거리가 밀리면 다음 날에 더 힘이 들기 때문이다.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는 일이어서 하루 쉬면 다음 날 두 배로 일해야 했다.

배달은 언제나 밀려서 쉬지 않고 일해도 주문량을 다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삼일 정도 배달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걸 잘 아는 동네 사람들은 연탄이 떨어지기 삼사일 전에 미리 연락을 한다. 간혹 배달 전에 연탄이 떨어지면 가게에 가서 한 두 장씩 사가곤 한다. 천재지변으로 배달할 수 없는 그런 날이면 급한 사람들은 가게로 와서 낱개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런 고객을 위해 구공탄 가운데 구멍에 새끼줄을 끼우고 아래쪽에 매듭을 지어 낱개로 들고 가기 좋게 미리 마련해 둔다.



   
손씨 가게는 수정동 산복도로가 끝나고 초량동 산복도로가 막 시작되는 곳에 있다. 서중학교 쪽으로 내려가는 세 갈래 길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영주동 방향으로 방향을 틀어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 왼편에 있다. 배달은 부부가 함께 했다. 오르막에선 몸집이 큰 부인이 앞에서 수레를 끌고, 다리를 저는 손씨가 뒤를 밀었다. 내리막길에서 밀려 내려가는 연탄수레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지나는 사람들이 콧잔등이나 이마나 볼에 탄가루를 묻히며 수레를 잡아 주거나 미는 풍경도 가끔 볼 수 있었다.

산동네 골목은 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수레를 개조해 썼다. 폭을 반으로 줄이고 길이도 3분의 2로 줄였다. 배달은 수레가 들어가지 못하는 곳까지 끌고 간 뒤에 세워 두고 그곳에서 등짐을 지고 날랐다. 등짐은 부부가 함께 졌다. 그리고 등에 지는 지게에는 몸집이 작은 손씨가 15장, 덩치 큰 부인은 18장씩 얹고는 허리 굽혀 나란히 다녔다. 주문이 항시 밀려있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다. 오르막이나 내리막은 서두른다고 진도가 빨리 나가지 않는다. 배달하는 집에 주인이 외출할 때는 집 열쇠를 가게에 맡겨 두기도 한다.

손씨는 처음부터 연탄가게를 운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젊었을 때 중앙부두에서 인부로 하역작업을 하였다. 시멘트 포대를 어깨에 메고 배에 싣거나, 수입하는 비료포대를 부리는 작업을 했다. 어느 날 하역 작업을 하던 중 배에 걸쳐 놓은 판대기가 갑자기 흔들리며 기울어져 그만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이다. 그때 다리에 골절상을 입어 치료를 한 뒤 무거운 부두 하역을 할 수가 없게 되자 빚을 내어 연탄가게를 열었던 것이다.



수레로실어 나르는 배달은 오르막보다 내리막이 더 힘들다. 내리막에서는 손씨가 수레를 끌었다. 구부러진 내리막길을 갈 때 올라 오는 차와 부딪힐 번한 일도 많았다. 특히 어스름녘에는 더 위험하다. 마주 오는 자동차가 있을 때는 더 그랬다. 한 번은 삼거리 내리막에서 연탄을 가득 실은 수레가 통제가 되지 않아 직선으로 가지 못하고 지그재그를 그리며 갈 때 앞에서 올라오는 차가 있었다. 손씨가 수레 방향을 틀었지만 가속이 붙은 수레는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놀란 눈을 치켜 올리며,

"어-, 저. 저. 저. 저…"

하는 사이 연탄을 가득 실은 수레는 전신주를 들이 박고 전복되고 말았다. 중심을 잃은 수레가 전봇대와 부딪혀 넘어지지 않았다면 차와 정면으로 부딪혔을 것이다. 그들에겐 작은 수레였지만 연탄을 가득 싣고 가는 내리막에서는 부부가 통제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 후 수레 뒤쪽 밑에다 폐타이어를 달아 브레이크로 사용했다. 키가 작은 손씨가 내리막에서 수레를 끌다 손잡이를 잡은 채 하늘에 솟구친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손씨가 배달하는 구역은 상당히 넓다. 부근에 연탄가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씨가 일하지 않는 날은 산동네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그럴 땐 한 장씩 낱개로 판매하는 걸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산동네 사람들은 손씨의 존재감을 느꼈다. 손씨도 동네 사람들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고 소량 주문에도 소홀하거나 꾀를 부리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그가 성실하다는 걸 잘 알았다. 그것이 그들 부부가 언제나 고마운 이유였다.



   
산복도로에서 바라 본 부산항 일대.
한 해가다 저물어가는 어느 날, 누가 선거에 나왔는지 모르지만 멀쩡한 골목에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인부들 셋이 모여 손으로 직접 시멘트를 비벼 포장공사를 하였다. 아침 일찍 그 현장에 손씨 부부가 찾아 왔다. 공사 진척사항을 물끄러미 보던 손씨가 인부에게 정중하게 청했다.

"부탁입니다. 골목에 계단을 만들지 않으면 안될까요?"

"이 사람이 미쳤나, 까꼬막에 계단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다녀, 미끄러져 다치는 꼴을 봐야 알겠어!"

계단이 높고 많으면 손씨가 일하기에 열배나 힘이 든다. 손수레가 갈 수 없으면 져다 날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씨는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계단을 만들지 말거나 낮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인부들은 막무가내다. 이미 설치한 거푸집에 시멘트만 부으면 되는데 그걸 뜯어내고 다시 해 줄 리 없다. 층계가 없으면 몰탈이 흘러내려 공사가 힘들게 되는데 부탁한다고 들어줄 리 만무하다.

인부들은 손씨를 무시하고 공사를 계속했다. 인부들의 높은 목소리에 서른 장 집에서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안절부절해 하는 손씨를 보고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아주머니가 손씨 편을 들었다.

"우리 집 앞에 계단을 만들지 마세요."

서른 장 아주머니가 나서자 집집마다 나서서 똑같이 주문했다. 인부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산동네 공사를 할 때는 없었던 일이다. 계단을 낮게 많이 만들면 다니기가 편할 텐데 왜 다들 집 앞에 계단을 만들지 못하게 하는 걸까? 인부들은 계속 계단 만들기를 고집했다.

"세멘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층계를 만들어 줘야 해요."

공사 인부와 주민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거푸집을 다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계단을 없애라는 강한 요구에 인부들이 어쩔 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합심하여 길을 점령하고 계단 없애기에 나섰다.

"계단이 있으면 불편하니까 없애라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공사를 할 수가 없어요."

"계단을 만들려면 차라리 공사를 하지 마세요."

"이 동네 사는 사람이 우선이지. 당신네들은 공사하고 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우리는 일 년 내내 계단 때문에 고생한다 말이에요."

"계단이 있으면 더 편리 하잖아요"

"당신하곤 이야기가 안 되니 반장 오라고 해요."

골목길은 결국 동네 사람들의 요구대로 계단 없이 밋밋한 경사를 이뤘다.

이 동네 어느 골목을 다녀도 수레가 가는 곳에는 그렇게 계단을 없애거나 계단 턱을 최대한 낮추거나 아니면 반쪽에만 계단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구봉로 51번 길은 연탄가게 손씨의 배달 구역이어서 그렇게 까꼬막인데도 층계 없이 죽 이어진 길로 구불거렸다. 인부들이 밤새 공사작업의 편리를 위해 주민 몰래 한두 개 계단을 만들기도 하였지만 다음 날 그 계단 턱은 여지없이 부숴지고 만다.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조카가 삼촌을 위해 계단 턱을 깎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산동네 길은 바닥 요철을 없애 수레가 쉽게 다닐 수 있는 층계 없는 까꼬막길이 되었다.

살기가 좋아지면서 주택이 개량되기 시작했고, 산동네에도 기름보일러가 설치된 집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손씨 일감도 많이 줄었다.

"이제 내 나이 쉴 때도 되었지…."

손씨는 그렇게 받아 들였다. 일감이 준 원인도 있거니와 오랜 노동의 결과로 혹사했던 몸이 기울어져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간혹 들어오는 주문에 아주머니가 배달을 담당하였지만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가 문을 닫았다. 몸집이 큰 아주머니마저도 무릎이 아파 더 이상 배달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가슴에 석양 노을을 안고 손수레를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힘들여 오르막을 가는 노부부의 모습을 산동네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365일 그들의 모습을 산복도로에서 늘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층계 없는 까꼬막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절룩거리며 수레를 끌고 가는 노부부의 모습은 노을에 함께 저물었다.


■바로 그곳- 구봉로 51번길

부산 동구 구봉로는 수정산 골짜기에서 타고 내린 물이 작은 개울을 이루고 아래를 향해 흘러가서 부산역 부근에서 바다로 빠지는 초량천을 복개하여 만든 길이다. 부산고교 앞에서 동일초등학교 앞에 이르는 구봉로를 초량천 복개를 뜯어내고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으로 복원하여 서울 청개천 수준으로 만들려고 계획 중이다. '구봉로 51번길'은 복원이 끝나는 지점인 '구봉로'에서 갈라진 샛길로 구봉성당 뒤편에서 크게 두 갈래로 갈라지는 그 사이에 나 있는 조그만 골목이다. 산 5번지는 이 초량천의 서중 맞은 편 기슭을 통칭하는 산동네 옛 번지다.


필자 강영환 시인 약력

   
강영환 시인
1951년 경남 산청 출생.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공중의 꽃' 등단. 79년 '현대문학' 시 천료,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남해' 당선. 시집으로 '칼잠' '산복도로' '울 밖 낮은 기침소리' 외 다수. 시조집 '남해' '모자아래' 외.


강영환 시인

※ 공동기획: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부산 동구, 국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