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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설] 나라·국민 지키려면 '원치 않은 결단' 내릴 수 있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2. 13.
입력 : 2013.02.13 03:02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2일 "3차 지하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면서 "이번 핵실험은 이전보다 폭발력이 크면서 소형화·경량화된 원자탄을 사용하여 높은 수준에서 안전하고 완벽하게 이뤄졌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57분 북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인근에서 리히터 규모 4.9로 추정되는 인공지진을 감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핵실험은 2차 때에 비해 폭발력이 네 배가량 커져 TNT 6~7kt가량이 폭발할 때 위력과 같다.

북한은 오바마 미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 날짜(미국 현지 12일)에 맞춰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1차·2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도 미국의 국경일 또는 주요 정치 일정에 맞춰 실시했다. 오로지 미국을 상대로 핵과 미사일 게임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핵 없는 세상'을 대외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고 북핵(北核)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갓 출범한 중국의 시진핑 5세대 지도부는 대북(對北) 지원 중단 가능성까지 시사해가며 북에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자신의 대북 구상인 한반도 프로세스는 "대화가 필요할 때는 유연하게 문제를 풀겠지만 북한의 도발에는 강하고 단호하게 대응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북이 주변의 이 같은 강력한 경고와 만류를 무릅쓰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은 핵(核)무장 노선을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밀고 나가겠다는 전략적 선택의 결과라는 뜻이다.

북 외무성은 2011년 5월까지만 해도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수령의 유지며 북조선이 나아가야 할 불변의 과정"이라고 하다가 지난달 "한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다. 앞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180도 입장을 바꿨다. 남과 북이 핵무기를 실험·제조·생산·접수·보유·저장·배치·사용하지 않기로 했던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20여년 만에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해 북핵을 포기시키기 위해 북한에 체제 보장과 경제 지원이라는 대가를 지불한다는 해법에 매달려 왔다. 그러나 북은 작년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성공에 이어 폭발력이 4배나 증가한 3차 핵실험까지 마쳐 스스로 핵보유국임을 주장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갖추게 됐다. 북처럼 폐쇄된 나라가 은폐된 장소에서 핵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 기술까지 갖추게 되면 그 나라의 핵 시설을 완벽하게 사찰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북의 핵 보유 지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북의 핵 보유를 현실적인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핵무장한 북과 핵이 없는 남 사이의 전력(戰力) 균형은 우리가 아무리 성능이 뛰어난 재래식 무기를 확충해 나간다 하더라도 북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게 된다. 박근혜 당선인은 그 불균형을 메우기 위해 우리가 어떤 자위적인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비상한 상황인 만큼 대응도 비상할 수밖에 없다.

당장의 선택 대안(代案) 가운데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북의 무효 선언으로 백지화돼 버린 만큼 1991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전후해 철수시켰던 미국 전술핵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2011년 초 미 백악관의 게리 새모어 대량살상무기 정책조정관은 "한국이 전술핵 재배치를 공식 요구한다면 미국이 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었고, 작년 5월 미 하원 군사위원회는 행정부에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권고하는 국방수권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박 당선인이 이와 동시에 검토해야 할 것은 북이 핵보유국 지위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2015년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권을 이양받기로 한 일정을 그대로 추진할 것이냐는 점이다. 그러나 북이 직접 핵무기를 운용하게 된 시대에 미국의 핵우산에 국민과 국가의 운명을 맡기는 이런 방안들이 얼마만큼 실효가 있느냐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북핵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다시 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북한에 대한 체제 인정과 경제 원조를 통해 북을 핵무장 이전 상태로 되돌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태까지 북이 보여온 태도로 미뤄볼 때 이에 대한 답은 'NO'다. 북은 외부 세계가 제공하는 체제 보장 수단에 기대는 것보다는 자신이 핵을 직접 보유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둘째, 미국 또는 중국이 혼자 힘으로 북을 포기시킬 수 있느냐는 물음이다. 이것 역시 쉽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고, 중국은 미·중과 중·일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방패를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직 검증되지 않은 대안은 미국과 중국이 힘을 합친다면 북을 움직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이런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우리의 전략적 선택은 미국과 중국을 그런 쪽으로 움직이도록 할 방법을 찾는 데로 모여야 한다.

  

한국과 한국 국민은 북핵을 머리에 이고 나라의 안보와 국민의 생사를 북한의 처분에 맡기는 것보다는 상당한 위험과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선 '원치 않은 결단'을 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미국과 중국이 절박하게 실감(實感)토록 만드는 것이다. 박 당선인은 이런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북핵 문제를 풀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