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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돈이란 무엇인가?(2)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2. 13.
20여년 전에 짐멜의《돈의 철학》을 읽다가 너무도 난해하고 재미가 없어서 중도에 책을 덮고 말았다. 《돈의 철학》이라는 책이 이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한번 전혀 다른 버전의《돈의 철학》을 써보기로 결심했다. 난해한 논리를 걷어내고,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책을 쓰고 싶었다. 2010년 ‘경영학자가 쓴’《돈의 철학》을 출간하여 현재 온오프라인에서《돈의 철학》을 교재로 <돈과 삶>이라는 교양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의 반응이 매우 좋아 무한한 보람을 느끼며, 전공(운송물류)을 제쳐두고 <돈과 삶>의 강의에 열중하고 있다.
 
현 한신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교수
BY : 임석민 | 2013.02.13

 

 

       

출처 한겨레

 

 

은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다.

 

 

우리의 그림자도 비춰주고 영혼도 보여준다. 삶의 많은 부분이 돈으로 표현된다. 돈이라는 단어에는 어떠한 단어나 개념을 갖다 붙여도 말이 된다. 돈은 악마, 천사, 사랑, 저주, 슬픔, 행복, 원한, 지옥, 천국 …. 돈은 영광이며 치욕이다. 돈은 천사이며 악마이고, 천국이자 지옥이며, 폭군이며 성군이다. 돈은 유용한 심부름꾼이며 무자비한 주인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돈을 갈망한다. 돈은 사람들의 공공연한 욕망이다. 돈은 건강, 직업과 함께 현대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다. 돈은 인간사회의 공통분모가 되었고 삶의 목적이 되어 버렸다. 수단이 목적으로 바뀐 것이다. 돈을 둘러싸고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졌고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돈에 끌려 다니는 우리의 일상을 보면 돈의 위력은 대단하다. 돈이 없어 쩔쩔매본 사람이라면 돈의 위력을 절감한다. 돈은 왕이다. 돈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은 불행의 고통을 덜어줄 수는 있다. 돈은 삶이고 죽음이다. 돈은 가장 통속적인 동시에 가장 철학적이다.

 

 

은 인격이다

 

 

“인간이 가장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존경과 우대를 받는 것이고,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시와 경멸을 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혜와 덕이 아니라 부와 권세를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은 부와 권세를 얻으려는 것이다.” 원래 도덕철학 교수였지만 경제학자로 더 유명한 애덤 스미스의 말이다.

 

돈을 가지면 덕스럽고 존경스럽고 고결하게 보이며, 돈이 없으면 비천한 하류취급을 받는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돈이 없으면 인격도 없다. 돈은 사람의 귀천(貴賤)을 결정한다. 태생, 행태, 사상이 아무리 저급하고 천박해도 돈만 있으면 우러러본다. 모두가 돈 앞에 굴복한다. 돈을 추구하면서 인격을 버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온갖 것이 돈으로 평가되고 측정된다. 돈은 여러 부분에서 성공 여부를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다. 사회가 사람을 돈으로 측정하기 때문에 우리도 자신과 타인들을 그렇게 측정할 수밖에 없다. 아니라고 펄쩍 뛰어도 소용없다. 돈은 자신과 타인을 판단하는 척도이며 사람을 움직이는 수단이다. 그러나 돈이 많다고 해서 인간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고 반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돈만큼 많은 것을 살 수 있는 것도 없다. 돈이 없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다. 보통사람에게 가난은 견디기 어려운 불행이다. 돈이 충분하면 독립할 수 있지만, 돈이 부족하면 누군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돈은 자립과 직결된다.

 

돈이란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는 돈이 너무도 귀중하다. 세상에는 배가 고파 쓰러지거나 일거리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이 많다. 오늘 저녁 밥값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감이 인생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돈에 의해 흔들리지 않으면 그 사람은 도통한 군자이다. 수행의 정도를 돈으로 점검할 수 있다. 거래를 해보고 마음에 분노심이 일거나 억울한 생각이 들면 아직 공부가 덜 되었고, 그런 마음이 안생기고 담담하면 공부가 된 것이다.

돈은 감정적 실체이다

 

돈이 슬픔, 분노, 증오, 기쁨을 결정한다. 돈은 최악의 고통과 최고의 기쁨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돈이 없으면 인간은 무기력해지고 비굴해진다. 지갑이 가벼우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돈이 없으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돈은 정신을 지배한다. 돈은 단순한 경제적 개념이 아니다. 돈은 감정적 실체이다.

 

 

돈은 평안과 함께 근심을 낳는다. 돈이라는 먹구름이 끼어있는 한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돈에 시달리는 사람은 온 정신이 돈에 사로잡힌다. 돈은 곤궁한 때에 최대의 유혹이 된다. 돈으로 고통받고 시달릴 때 사람들은 비애를 느낀다. 돈은 영원한 긴장이다.

 

돈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할 때에 가치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마음으로 느끼는 행복, 사랑, 아름다움, 진실, 안정을 돈과 교환할 수 없다고 말한다. 교환된다. 행복, 사랑, 아름다움, 진실, 안정은 심리적 요소이다. 돈은 생활수준은 물론 정신상태를 좌우한다. 돈은 자신감의 형성에 결정적 작용을 한다.

 

 

은 자유이다

 

 

돈은 육체적․심리적 자유를 보장한다. 자유는 인간가치의 최고봉이다. 자유는 매사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권(主權)이다. 자유는 선이며 행복이다. 많은 경우에 돈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시킨다. 돈은 독립된 생활과 안정된 삶을 보장한다. 돈은 궁핍과 고뇌를 면하게 하고 비천한 부역(賦役)을 면해준다. 돈이 있어야 자신의 시간과 재능에 대한 주권을 보유하며, 아침마다 ‘오늘도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돈은 인격적 자유이다. 돈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될 자유,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일을 하지 않을 자유, 온갖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준다. 돈은 독립․해방을 뜻한다. 돈이 있으면 날품팔이를 하지 않아도 되고 빈민가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돈은 삶의 균형을 잡아준다. 돈은 자아를 확대한다. 돈은 여성에게 독립과 자유를 선사한다.

 

돈의 부재(不在)는 부자유이다. 모멸감, 불편함, 좌절감, 자괴감, 수치심 등을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가 부자유이다. 내가 나의 스케줄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인간은 부자유를 느낀다. 자유는 돈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에 가능해진다. 돈은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에게 10배나 더 귀중하다. 돈은 개인의 자유를 신장하는 최대의 수단이다. 돈은 쓰기 위한 것, 호의호식을 위한 것, 과시하기 위한 것, 타인을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평화와 자유를 위한 것이다.

 

– 졸저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