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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곽병찬 칼럼] ‘검찰이 씌웠다는 누명’ 특검으로 벗겨라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8. 22.

등록 : 2013.08.21 19:02 수정 : 2013.08.22 11:20

 
 
곽병찬 대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이렇게 선서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국가를 보위하며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헌법 69조에 따른 것으로, 선서문 자체가 헌법에 명기돼 있다.

 

미국 대통령의 취임 선서문은 더 간단하다. 불과 35개의 영어 단어로 되어 있다. “나는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미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보호하고 보전해 나갈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직무는 헌법에 모두 담겨 있으니, 헌법 준수와 수호만 다짐한다.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입만 열면 ‘대선 불복이냐’며 도끼눈을 뜬다. 국정원 정치공작을 규탄하는 집회에 대해서도 그렇고, 심지어 특검 요구에 대해서도 ‘대선 결과를 뒤집겠다는 속셈’이라며 희한한 협박을 한다. 특검하면 대통령이 하야할 상황이 온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더 희한한 것은 민주당이 그 기세에 눌려 ‘대선 불복’ 으름장만 나오면 자라목처럼 잔뜩 움츠러든다는 사실이다. 국가 정보기관과 경찰이 선거에 개입하는, 헌법 파괴 행위 여부를 밝혀보자는 것을 두고 난리를 치는 것도 황당하지만, 그런 억지 주장이 통하는 현실이, 시쳇말로 참 당황스럽다.

 

새누리당이 청문회를 마치면서 국정원과 경찰의 선거개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고 단정했다. 일부는 승리를 자축하기도 했다고 한다. 무기력한 민주당을 상대로 진상 조사를 훼방 놓는 데 성공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의 눈을 가리는 데 성공했다는 환호임을 잊은 자평이니 딱하다. 바로 그날 천주교 수원교구 사제 625명이 시국선언과 함께 시국미사를 올렸다. 원불교 성직자인 교무들의 시국선언도 잇따랐다. 이미 교수들은 전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선언을 했고, 변호사 단체 등 시민사회단체와 학생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우리 사회의 양심과 지성을 대표하는 이들이다. 그들을 새누리당은 바보 천치로 여긴 것이다.

 

물론 이들을 희롱할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오로지 겨냥한 것은 국정원장과 서울경찰청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한 검찰이다. 이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권성동 국정조사특위 간사는 “검찰의 수사 결과에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친정부 신문들은 검찰이 증거를 조작하거나 짜깁기해 기소했다는 기사나 사설을 잇달아 실었다. 검찰 기소는 이들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목엣가시였다. 그걸 이제부터 뒤집으려는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 국정원과 경찰, 여기에 친정부 언론까지 가하는 압박이 앞으로 공판 과정에서 검찰이나 재판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안타깝게도 그것이 자승자박이란 걸 모른다. 검찰이 수사와 기소권을 남용해 죄 없는 이들을 기소했다면 이는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를 위해 도입한 것이 특별검사제다. 야당의 주장과 의도에 따라 증거까지 조작하면서 있지도 않은 권력기구의 선거개입을 기정사실화했다고 생각한다면, 새누리당은 특별검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검찰의 잘못을 밝히면 된다. 그런데 특검 이야기만 나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대선 불복’을 외친다. 이게 무슨 잠꼬대인가.

 

헌법이 수호하려는 최고의 가치는 '민주주의'이고 '주권재민'이다. 이를 위해 헌법과 법률은 권력기구가 국민의 주권행사인 투표의 자유를 침해하고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짓은 무엇보다 엄격하게 단죄하도록 한다. 국정원과 경찰의 대선공작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만큼 헌법 수호를 위해 중요한 일은 없는 까닭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지금 따져야 할 것은 해괴한 대선 불복 여부가 아니라 헌법 수호 여부다. 불과 6개월 전 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서 헌법 수호를 맹세했다. 그 선서를 청와대와 여당이 농락해선 안 된다. 검찰권이 남용됐다니, 부디 새누리당은 특검으로 그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 민주당도 기회주의적 행태로 우리 사회의 양심과 지성을 욕보이지 말기 바란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