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신문
- 박창희 선임기자 chpark@kookje.co.kr
- 2012-12-17 19:11:19
- / 본지 22면
'초량 이바구 길'의 핵심 코스인 초량초등학교 옆 골목 갤러리 예정지이다. |
-옛 백제병원서 출발
- 초량초등학교 지나
- 이바구 공작소까지
- '초량 이바구길' 조성
- 과거·현재·미래 관통
- 동구 속살 맛보는 셈
- 월남전 참전용사들
- 오고간 부산항 3부두
- 역사적 의미 묵직
- '파병 추억'의 명암
- 콘텐츠로 승화돼야
- 동구 기반으로 삼아 빛나는 족적 남긴 역사 인물들 다양
- 그들의 업적 재조명, 미래 좌표 가늠자로
부산 동구가 '이바구 특별구'로 변신하고 있다. 산동네, 산복도로가 많아 살기 불편하고 낙후된 이미지가 강했던 동구 구석구석에서 숨겨져 있던 이바구가 발굴되면서 목하 발빠른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동구는 부산의 근대사가 집약된 축소판이다. 범일동 증산(甑山)의 원래 이름이 부산(釜山)이란 데서 알 수 있듯, 부산의 종가인 셈이다. 산복도로 르네상스 바람을 타고 이바구가 주민 삶을 개선하는 지렛대로 작용하면서 '스토리노믹스(Storinomics, 이야기 경제)가 형성될 조짐도 보인다. 정영석 동구청장이 이른바 '동구 스토리노믹스'의 일선을 지휘하고 있다. '동구 스토리텔링 TF팀'은 지난 주 동구 스토리의 역동적 현장을 파고들었다.
■초량 이바구길
부산 동구의 이야기 자원들이 산복도로 르네상스 바람을 타고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동구 초량동 168계단에서 동구 스토리텔링 TF팀이 이야기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소설가 김하기 씨다.박창희 선임기자 |
출발지는 부산역 맞은 편인 동구 초량1동 옛 백제병원. 1922년 한국인 의사 최용해가 세운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이다. 이후 중국요릿집, 일본군 장교 숙소, 해방 후엔 치안대 사무실, 중국 영사관을 거쳐 1953년께 개인 소유가 되어 예식장 등으로 사용됐다. 늦었지만 부산시는 지난 7월 이곳을 근대건조물로 지정했다.
옛 백제병원 바로 옆에는 옛 남선창고가 자리했다. 남선창고는 초량 앞바다가 매립되기 전인 1900년에 세워진 부산 최초, 최고(最古)의 물류창고. 일명 명태고방으로 불리며 국내외 교역의 거점이 돼 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헐려 지금은 대형 마트가 들어서 있다. 가까스로 남은 동쪽 벽돌 담장 한줄이 과거 영화를 증언한다.
길은, 늘푸른 포스트빌(빌라) 골목을 따라 초량초등교(1937년 개교)와 초량교회 쪽으로 이어진다. 초량초등교는 가수 나훈아와 개그맨 이경규, 음악감독 박칼린, 연극연출가 이윤택, 연극인 김동석 손용택, 만화가 박재동 등을 배출한 명문. 잘 꿰면 동구의 인적자산이 될 수 있는 '원석'들이다.
초량초등교와 초량교회 사이에 난 골목길은 곧 '골목 갤러리'로 꾸며진다. 학교 담장 벽에 스토리가 있는 그림을 채워 문화골목으로 가꾼다는 것. 폭 5~6m, 길이 100여m의 이 골목길은 이미 기초공사가 끝난 상태다.
코앞에 가파른 168계단이 다가와 있다. 계단수가 168개란다. 산복도로 주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나 있는 '까꼬막'(가파른 곳이란 뜻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꾸역꾸역 계단을 오르자 놀라운 전망이 펼쳐진다. 부산역과 그 뒤편의 북항 재개발지역, 건설 중인 북항대교가 한눈에 들어온다. 동행한 동구 문화체육과 성현희 씨는 "까꼬막도 달리 보면 전망대가 된다"면서 "앞으로 이곳을 슬로시티로 가꾸어 북항을 찾는 관광객들을 불러들일 계획"이라고 전했다. 산복도로 곳곳에 폐공가가 보였으나 매물은 거의 없고 집값은 오르는 추세라고 한다.
초량 이바구 길은 영초윗길 26번길을 지나 공사 중인 이바구 공작소(산복도로 아카이브센터)까지 이어진다. 옛 병제병원에서 이곳까지는 900여m에 불과하나, 동구의 속살과 근대의 흔적, 미래의 변화까지 엿볼 수 있어 앞으로 명품 골목투어 코스가 될 전망이다.
■3부두, 그때 그 자리
장소와 시점을 옮겨 북항재개발 지역으로 눈을 돌리면, 눈물자국 선연한 부산항의 역사 한 자락을 만난다. 3부두, 바로 월남 파병때 국군이 떠나고 돌아온 자리다.
"아이고, 말도 마이소.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비장해지고 가슴이 먹먹허요. 전쟁터 가는 사람 기분은 안 당해보면 모르지. 그때 3부두는 정말 대단했어요. 중·고등학생들이 나와 '파병 환송식' 플래카드를 들고, 국기를 흔들며 노래 부르고, 팡파레 속에 한쪽에선 떠나는 사람, 보내는 사람이 갈라져 울고 불고 난리였지. 군당국은 마음 약해진다고 가족도 못만나게 했어. 아, 그 자리에 천지개벽(북항 재개발)이 일어나고 있으니…"
월남전 참전용사인 임철석(68) 씨의 회고다. 월남참전유공전우회 부산 북구지회 홍보국장인 임 씨는 1969년 12월26일 부산항을 떠나 월남전을 치르고 70년 12월1일 귀국했다. 그는 부산항 환송식 때의 사진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요청으로 1965년부터 1973년까지 8년간 총 31만2853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전쟁 수행 중 2만여 명이 죽거나 다쳤고,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고엽제 후유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월남전이 한국 사회에 끼친 명암을 생각하면, 파병 출발지인 부산항 3부두가 갖는 역사적 무게는 가볍지 않다. '울며 불며 헤어진' 그날의 모습이 부산항의 시린 풍경이라면, 한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이국땅에 들어가 국가 위상을 높이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것은 국가적 변화다. 당시 한국군은 이등병 기준으로 월 37달러를 받았다(미국군의 20분의1 수준). 반면 장교들에게 베트남은 군수품 차떼기 등 기회의 땅이었다. '짜옹한다'(윗 사람에게 잘보이려고 호의를 베푼다)는 베트남 단어가 말해주듯, 우리 사회 부패의 시작도 베트남전에서 찾을 수 있다.
파병의 기억은 단순한 추억 그 이상이다. 2010년 10월2일, 해병대와 월남참전전우회 등이 개최한 '월남파병 출항 재현 기념식'을 스토리텔링 이벤트로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스토리는 장소성이 중요하므로 '월남 파병'이라는 추억 자산을 공감의 콘텐츠로 승화하는 작업이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동구의 역사 인물들
부산 동구는 부산 근대사의 종가답게, 많은 역사인물들이 명멸했다. 이들 인물을 짚어보면, 동구의 근대성과 국제성이 읽히고 미래 좌표가 엿보인다.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을 사수하다 순절한 정발 장군과 일제 강점기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한 박재혁 의사(범일동)가 우선 꼽힌다. '독도 지킴이' 안용복의 출생지가 '동래부 부산면 좌천1리 14경3호'(현 범일5동 매축지9길)라는 것도 눈길이 간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가 청십자의보조합을 출범시킨 곳이 초량동이며, 일신기독병원을 설립, 평생 헌신을 한 매혜란 여사가 활동한 곳이 좌천동이다. 반독재 민주운동가 박기출과 격동기의 정치인 허정이 각각 초량동 출신이다.
또 소설 '찔레꽃'의 작가 김말봉(좌천동)과 국민가곡 '그네'의 작곡가 금수현(경남여중 교장 역임), 청마 유치환(경남여고 교사, 수정동에서 타계) 선생이 동구를 거쳐갔다. 동명목재를 설립한 강석진 회장이 좌천동, 범일동에서 기업의 기틀을 세운 것도 특기할만 하다.
6.25 전란 와중에 화가 이중섭이 예술혼을 불태운 곳이 동구 범일동이며, 통일교가 '토담집'을 짓고 새로운 종교를 싹틔운 곳 또한 동구지역이다.
동구의 역사 인물들은 활동 반경이 단순히 동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저마다 동구의 근대성과 국제성을 이야기 하고 있을 뿐아니라, 일부는 미래를 예지한다. 동구가 발전 모토로 내세우는 '부산을 보고, 우리나라를 보고, 세계를 볼 수 있는 곳'이란 표현이 결코 허사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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