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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도청도설] '이동흡깡'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3.
국제신문
   
'깡'이란 단어를 들으면 뭐가 먼저 떠오르는가? 새우깡이나 감자깡이 생각난다면 지금 배가 출출하거나 입이 궁금한 분이다. '깡다구'가 떠오른다면 "악으로! 깡으로!"를 외쳤던 해병대 출신일 터. '와리깡'을 연상하는 분은 돈에 쪼들리는 중소기업 사장님이기 십상. 다른 뜻 몇 개도 들겠다. 뗏목의 통나무를 마주 잇는 말발굽 모양의 쇠못. 뇌관을 뜻하는 광부의 은어. 북한에선 '강철'을 뜻하는 입말.

어음 할인을 뜻하는 '와리깡(割り勘)'이란 일본말은 정작 본토에선 '나눠내기'란 뜻. 일본식 더치페이. "내가 쏜다!"는 호기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제 밥값을 끝자리까지 꼼꼼하게 나누는 일본식 회식 풍경에 고개를 내젓는다. 하지만 남에게 폐 끼치는 걸 큰 실례로 여기는 일본인은 공짜밥을 먹으면 오히려 불편해 한다. 오죽하면 와리깡할 액수를 계산해 주는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도 있을까.

우리가 가끔 쓰는 '분빠이(分配)'란 일어가 와리깡의 원래 뜻에 부합하는 셈. '추렴'이란 우리말을 두고 와리깡이나 분빠이란 말을 쓰는 버릇 역시 고쳐야 하겠지만. 추렴은 '출렴(出斂)'에서 유래했으니 '도리기'란 토박이말이 더 좋겠다. 여럿이 돌아가며 한턱씩 내는 건 '돌림턱'.

한국인의 외국어 응용력은 여기서도 유감 없이 드러난다. 와리깡에서 '깡'만 살려 카드깡, 상품권깡, 휴대전화깡 같은 신조어로 끊임 없이 진화시키니. 사채업자가 채무자 명의로 신용카드를 개설해 사들인 물건을 현금화하는 게 카드깡. 상품권을 싸게 팔아 현금을 만드는 건 상품권깡, 휴대전화를 개설해 사채업자에게 넘기고 돈을 빌리는 게 휴대전화깡. 모두 불법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깡'계에 초절정 고수가 나타났다. 이름하여 '항공기깡'. 해외출장 때 나랏돈으로 지급하는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 항공권을 한 등급 낮춰 타고는 차액을 챙기는 수법. 헌재소장 후보자로 나선 이동흡 씨가 창안했대서 '이동흡깡'이라고도 한다나. 밤낮 없이 헌법을 유권해석하는 고단한 일과 중에도 후배 공직자의 용돈벌이를 위해 다양한 세금 흡입 비급을 개발·전수하신 그 분의 실사구시 정신에 삼가 경의를 표할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