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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내사랑 중구여)

내사랑 중구여(2)

by 부산중구마중물 2022. 8. 16.

2.주황색 공중전화 박스에 매달렸었던 우리 가족

새진주식당은 지금도 장사를 하고 있었지만 70년대에도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했었다. (진주비빔밥은 선지국이 곁들여지고 전주비빔밥은 선지국이 없다는 차이점을 요즘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당시 누나, 나, 여동생은 형님이 술을 마시고 집에 들어와 깽판을 치면 누나가 아니면 내가 쫓아가서 당시 20원을 넣고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는 연락병 역할을 했었다. 왜냐하면 연락을 해서 아버지가 오시지 않으면 형님의 행패는 감당이 불감당 이기도 했었고 맞고 기분좋은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포는 진짜진짜 싫었다. 술을 마시고 집에 오면 우리 3남매 특히 누나와 나, 특히 내가 공격의 대상이었다. 단지 남자라는 이유하나만으로....술이 돼 귀가하면 나에게  되지도 않는 트집을 잡아 때리고 가재도구를 부수었다. 그래서 우리 3남매는 제발 술먹고 행패부리지만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었다.

언젠가는 하도 괴롭히기에 형님의 얼굴에 침을 뱉아 버린 적이 있었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했겠지 싶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생각으로 그리 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부모님이 나의 빽이라고 생각을 아마 했지 않았었나 싶다. 앞선 이야기에서 '씨가리' 얘길 했었다. 지금 회상을 해보니 그 씨가리라는 두목이 형님은 물론 자기 똘마니들에게 집에 있는 돈이돼는 가재도구를 가지고 오라고 시켰으리라 짐작은 하지만, 어느날 당시 아톰, 황금박쥐, 연속극 여로 등을 보았던 일제 내쇼날 티비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당시 대연각호텔 화재등을 볼 때도 전파사의 티비를 보고 뉴스를 전달받던 시절이었다. 전파사로 냉큼 달려가 보니 우리집에 있던 똑 같은 싸이즈 같은 모델의 닐제 내쇼날(National) 티비가 떡하니 진열되어 있는 것 아닌가 날마다 지나치는 길이었기 때문에 어젠 없었던 티비라 난 우리집꺼다 확신을 가지고 아버지에게 일러 바쳤다. 아버지는 전파사로 가서 형님이 잡혀 먹을 때 받아갔던 돈을 주고 찾아오신 듯 했다. 그리고 당시 나에게 감당도 못할 5천원을신고(?) 포상금으로 주시었다. 물론 그 돈, 5천원은 어머니에게 보관당했다. 난 그날 일 때문에 형님한테 맞아 죽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그날 이후 조용했다. 당분간 조용한 침묵은 유지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계속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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