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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감’에 의존한 전략, 실패 불러…데이터 근거 ‘과학 선거’ 해야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16.

등록 : 2013.01.16 20:24 수정 : 2013.01.16 20:24

 

문희상 민주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왼쪽)이 ‘회초리 민생 현장 방문’ 이틀째인 16일 오후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천막농성장을 찾아 고 최강서씨 유족과 한진중공업 노조 관계자에게 절을 하고 있다. 부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민주당의 길을 묻는다
③ 현대화가 살길이다

“높은 투표율=승리” 빗나간 예측
“투표율 100% 되도 결과 같아”
전문가들 충고 귓등으로
데이터 취약해 전략 오락가락

민주통합당 핵심 전략가들은 대선 전에는 1300만표를 넘으면 문재인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해찬 전 대표는 “단일화를 해서 65% 투표율에 1300만표를 얻으면 충분히 이긴다”고 말하기도 했다. 단일화만 성공하면 승리할 것이란 낙관론이 넘쳐났다. 문 후보는 1469만여표를 얻고서도 패했다. ‘예기치 못한 패배’는 민주당의 좌절과 후유증을 증폭시켰다.

 

계파 해체, 정당문화 개선 등 민주당의 혁신과 환골탈태를 요구하는 주문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시급한 과제로는 선거 지휘부로서의 당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이 꼽힌다. 정책과 전략, 홍보 등 당의 핵심 기능을 전반적으로 업그레이드해 유능하고 현대적이며, 과학화한 정당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민주당은 과학적 분석에 기반한 일관된 전략 설정, 이에 기반한 맞춤형 정책개발, 이를 이슈화해 선거전을 주도하고 민심을 사로잡는 캠페인 영역에서 모두 역량 부족을 드러내며 새누리당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보와 광고에서도 완패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최근 독자적인 대선평가 보고서를 펴낸 강민 민주당 대의원은 “이번 대선은 (100만여표 차이였으니) 50여만 표만 더 가져오면 승리하는 선거였다. 빅 데이터를 토대로 마이크로 타깃팅을 하면 승리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의 사례는 시사점을 준다. 미국 민주당은 1980년 로널드 레이건에게 패한 것을 시작으로 내리 3차례의 대선에서 패한 뒤 89년 처절한 변화의 몸부림을 거치고서야 92년 빌 클린턴을 앞세워 정권을 탈환한다. 이때 민주당의 변화 기반을 닦은 이가 론 브라운이다. 그는 89~93년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단 한 가지를 자신의 핵심 책무로 강조했다. 누가 당의 후보가 되든지 활용할 수 있도록 각종 선거와 관련한 데이터를 안정적으로 모으고 분석하는 시스템을 만다는 게 그것이었다. 에스엔에스(SNS) 컨설턴트인 유승찬씨는 “미국 민주당도 각자 계파의 이해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대선 전략과 정책을 만들었고 제대로 된 분석과 평가가 없었다. 브라운 위원장 이후에야 ‘데이터 선거’를 시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미국 민주당은 정확한 데이터에 기반해 시대 흐름과 사람들의 욕망구조를 냉정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그에 근거해 전략과 정책을 짜는 과학 선거의 시대를 열었다. 빌 클린턴이 내세운 ‘정책의 정치화’와 중도적 색채를 강화한 ‘신민주당 노선’도 브라운이 기획한 데이터 선거의 기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변화로 평가된다. 유승찬씨는 “이런 데이터 선거의 흐름은 버락 오바마에 와서 트로스팀이라고 불리는 280만명의 트윗 전담팀으로 꽃피웠다. 트윗 데이터 분석에 근거해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가 우세한 뉴욕 트로스팀은 대거 경합주로 이동해 활동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5060 증가 등 인구구성 분석
세대별 욕망과 불안 읽고
맞춤형 정책 제시 급선무

 “50대 장기간 조사해 자료 쌓길”

 

민주통합당은 지난 대선에서 전략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감’에 의존하는 기존의 낡은 습성과 결별하지 못했다. 오류로 드러난 '세대전략'과 '투표율' 전략이 대표적이다. 민주당은 투표율 상승이 무조건 민주당 후보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투표율을 높이기 전략으로 투표시간 연장에 집착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정책과 핵심 슬로건 등 내용을 내세워 선거전을 펼쳐야 할 때 민주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공을 쏟았다. 투표시간 연장이 투표율을 높이는데 별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더 근원적으로 투표율이 실제 선거 결과와 연관관계가 별로 없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민주당은 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 교수는 “1987년 이후 국내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전체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설령 투표율이 100%가 된다 해도 선거 결과는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투표율이 높아질 경우 결과가 달라지는 선거가 딱 2번 있었지만, 이는 오히려 민주당이 승리한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승리로 뒤바뀌는 사례였다”고 말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민주당의 전략적 판단 자체가 과학적 근거가 미약한 추정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얘기를 민주당 쪽에 전했지만, 민주당은 투표율에 더욱 매몰됐다”고 했다. 투표율이 높으면 무조건 유리할 것이란 착각은 잘못된 세대전략으로 이어졌다. 민병두 의원은 대선 패인을 분석한 글에서 “민주당과 문재인후보, 안철수후보의 세대전략은 20-30대의 ‘집단적 대폭발’이었다. 이것이 핵심전략(key strategy)이었다. 그리고 스윙보터(swing voter)로서 40대의 우군화였다. 50대의 보수화와 결집을 등한시했고, 심지어 50대의 소외감을 방치하고 즐긴 측면도 있다”고 짚었다. 5060 세대의 증가라는 인구구성의 변화와 안철수 후보 지지층의 분화 가능성 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전제됐더라면 투표율 높이기와 20-30세대에 과도하게 목을 맸던 민주당의 전략도 달라졌을 수 있다.

 

과학적 데이터에 근거한 정밀한 분석이 없다 보니 캠프의 전략 또한 오락가락했다. 문재인 후보는 공식선거운동 첫날 부산 유세에서 ‘박근혜 후보는 유신 잔당’이라고 공격하며 ‘박정희 대 노무현’ 구도를 자초했다. 뒤이어 ‘정권교체론’으로 프레임 전환을 시도했으나, 이 또한 과거 심판의 회고적 성격이 강해 문 후보의 비전을 보여주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유권자들은 민생 비전이 아니라 정치공방을 중심으로 민주당을 평가했다.

 

민주정책연 계파와 무관하게
당 싱크탱크로 발전시켜야
장기전략 집중·데이터 축적케
“창조적 대안 제시 기구 활용을”

 

우위를 자신했던 정책 경쟁에서도 취약점을 드러냈다. 단일화 과정 관리 실패로 단일화 이후 민생 비전을 중심으로 문 후보의 강점을 살려나가겠다는 구상에 차질을 빚었다. 문재인을 찍으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는 희망의 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개인 의료비 100만원 상한제와 반값등록금, 0~5살 무상보육 등의 민생공약을 일부 마련하고도, 선거전의 핵심 의제로 이를 끌어올리지 못했다. 단일화에 집착하다 보니 정책을 강조할 여력이 부족했던 측면도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대목이었다. 김기식 의원은 “‘새정치’ 같은 추상적 구호에 매몰돼, 민생정책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63%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찍은 50대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는 맞춤형 민생 공약 제시에서 역부족을 보였다. 세대별 욕망과 불안을 읽어내고 이를 달랠 맞춤형 정책을 제시하는 능력을 갖췄더라면, 적어도 50대 89%가 ‘묻지마 투표’에 나서는 상황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뒤늦게 나온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난 대선에선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어떤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지와, 이런 비전을 후보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체화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느냐의 두 가지에서 민주당이 모두 졌다”고 말했다. 유승찬 컨설턴트는 “이제라도 민주당은 50대 3000명을 장기간 세부 조사해서 데이터를 축적하고 대책을 세우는 식의 현대적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민주당은 1980년대 3연패뒤
주먹구구 아닌 데이터 선거로 전환
사람들 욕망구조 냉정한 분석
‘신민주당’ 노선 내걸어 승리

 

당의 현대화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당의 연구 및 정책 기능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정책연구원을 계파의 부침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당의 두뇌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민주정책연구원은 연간 45억원의 국비를 지원받고 있지만 집권을 준비하는 정책 싱크탱크의 기능을 하기보다는 특정 정파와 지도부가 요구하는 단기 전술적 문제를 연구하는 데 역량이 허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강민 대의원은 “연구원은 장기 전략에 집중하고 데이터를 집약해야 한다. 당명이 바뀌고 선거가 끝나고 지도부가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자료를 관리하고 분석하며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책임단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지낸 김민영 전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유능한 정당이 중요하다. 선거 치르는 능력과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당료를 공채하고 당내 선거와 계파 다툼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민주당도 당력을 키워야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