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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환경노동

[왜냐면] 거짓말을 수출하자는 대통령 / 염형철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17.

등록 : 2013.01.16 19:18 수정 : 2013.01.16 19:18

4대강 공사가 한창이던 2011년 6월 경북 상주시 낙동강 33공구 상주보 공사 현장에서 굴착기들이 모래를 퍼내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환경엔 국경이 없다. 4대강 사업으로 꽁꽁 언 강에서 먹이를 찾지 못해 굶주리고 있는 낙동강 큰고니들은 여름철 시베리아 벌판을 노닐던 녀석들이다. 타이에서 월동중인 도요새 무리들 중엔 한반도를 거쳐 간 경우도 많다. 중국 원전에서 사고가 난다면 우리도 그 피해를 면하긴 힘들다. 환경운동에 국제연대의 전통이 강한 이유다.

 

76개국에 회원단체를 둔 세계적 환경단체 ‘지구의 벗’이 4대강 사업 중단을 위해 이메일 보내기 캠페인을 전세계적으로 벌이고, 니모 배시 의장이 여러 차례 방한한 것도 이런 전통 때문이다. 세계적인 습지단체 200여곳이 모인 세계습지네트워크의 크리스 로스트론 의장 등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4대강 사업의 중단을 촉구하며 2009년에 서한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국무회의에서 ‘일부 비정부단체(NGO)가 한국 기업의 타이 물관리 수주를 반대하는 운동을 하는 것은 매우 반국가적이고 비애국적인 행동이며, 엔지오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이런 특징을 이해하지 못한 촌스러운 발언이다. 국제단체들이 4대강 사업에 반대했듯 한국 환경단체들이 타이판 4대강 사업을 우려하고 우리의 경험을 전달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공사 하나 수주가 아니라 4대강 사업의 골격과 방식을 그대로 수출하겠다는데도 침묵한다면 제대로 된 환경단체라고 할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타이 사업이 4대강 사업의 연장선에 있음을 강조해 왔고, 수자원공사를 비롯한 4대강 사업 참여 업체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했다. 공사 수주 활동에는 대통령까지 나섰다. 이 과정에서 ‘4대강 사업이 없었으면 지난여름 물난리가 날 뻔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부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일은 ‘외국에서도 환영받는 사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한국 국민들을 달래려는 것인지 모른다. 따라서 한국 컨소시엄이 타이 사업 수주에 성공한다면, 이는 한국 정부가 비정상적인 지원을 해서라도 4대강 사업과 비슷한 모양으로 발표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문제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수출했다는 원전 계약에조차 ‘한국이 경비 군인을 파견하고, 재정 장기저리 융자를 실시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듯, 수질오염에 따른 ‘녹조라테’ 사태와 건설사 담합 사건 등으로 눈총받고 있는 4대강 사업을 수출하기 위해 놀라운 조건들이 붙을 수밖에 없다. 이 몰상식의 간극은 한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메워질 것이고, 타이는 훼손된 자연환경 위에 불필요한 시설만 떠안게 될 것이다. 부패한 정치인과 기업들은 잔치를 벌이겠지만.

 

물론 한국 환경단체들은 타이의 물관리 정책이 발전하길 바란다. 그러나 한국의 4대강 사업과 같은 시행착오는 겪지 않기를 원한다. 4대강 사업의 진실, 이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다른 면을 전달할 책임을 느끼는 이유다. 타이 정부와 국민이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균형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자 하는 근거다.

 

이 대통령이 ‘반국가’, ‘비애국’ 등의 개념을 동원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관계 당국에 ‘대책을 강구하라’고 한 지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걱정이다. “은퇴 후엔 환경운동을 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께 제발 부탁드리건대, ‘한국 환경단체들의 활동보다 환경적으로 생각하기부터’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