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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 정송남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25.

등록 : 2013.04.24 19:21 수정 : 2013.04.24 19:22 [한겨레]

지난 주말 학생들과 함께 연극을 보러 갔다. 공선옥 소설 <꽃 같은 시절>을 마당극 형식으로 공연한 것이다. 내용은 한 농촌 마을에 석재회사가 들어서면서 주민들과 기업주 사이에 빚어진 갈등에서 시작된다. 주민들이 수호신처럼 여기던 우두산에서 돌을 캐기 위해 회사는 공장을 가동하게 되고, 조용하던 마을은 소음과 돌가루에 휩싸이면서 작물이 피해를 입고 주민들의 삶터는 망가지기 시작한다. 생존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은 계속되지만, 석재회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쇄석기 설치 전 업종 변경 승인 미이행, 소음과 진동 배출 시설 변경 신고 수리 전 가동, 산림 불법 전용 등 불법 영업을 한다. 이에 주민들은 촛불 시위와 군청 앞 농성으로 맞서고, 초등학생까지 침묵시위로 동참한다. 급기야 이 투쟁을 불법으로 간주한 공권력의 개입이 이뤄지면서 주민들은 재판에 회부되고, 권력의 앞잡이인 사법부는 손해배상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수천만원까지 벌금형을 때린다.

 

연극 속 주인공인 할머니들은 재판 과정에서 순진무구한 시골 노인 특유의 거침없는 답변으로 배꼽 잡는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한편 권력 앞에 힘없이 당해야 하는 민중들의 애환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 시대의 개발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 작품은 자본과 권력이 합작하여 어떻게 민중들의 삶을 짓밟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개발이라는 이름을 단 자본의 횡포 앞에 스러져가는 이런 민중들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꽃 같은 시절’은 있었다. 아니 우리들의 삶이 적어도 산업자본주의라는 악령이 지배하기 전에는 다 꽃 같은 시절이 아니었겠는가?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날의 천지는 수채화 전시장을 방불케 했고, 황금 물결 출렁이던 가을 들판은 풍요로움 그 자체였으며, 이웃의 일을 자기 일처럼 알고 협력하던 마을 공동체에서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던 인정들은 돈이 없어도 넉넉한 마음을 누렸다. 인간뿐 아니라 존재하는 뭇 생명을 경외하며 자급과 자족을 누리던 아름다운 시절들…. 하지만 자본을 위해서는 못할 짓이 없는 타락한 시대여! 그래서 성서는 돈(자본)과 하나님(진리)을 함께 섬길 수 없으며, 먹고 마시는 일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라고 했던가!

 

매주 일요일 저녁이면 한 개그맨이 등장하여 말한다.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이러면 안 되는 일은 텔레비전 속에만 있지 않다. <개그콘서트>보다 더 웃기는 일이 현실 속에서 매일 배반의 역사로 벌어지고 있다. 소위 배운 자들, 가진 자들이 그들의 권력과 자본으로 부리는 횡포 속에서 민중들의 생계와 생태 환경은 무너져 가고 있다.

 

 

정송남 전남 담양 한빛고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