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제

[세상 읽기] 키프로스 구제금융 사태의 교훈 / 유종일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6.

등록 : 2013.03.25 19:15 수정 : 2013.03.25 19:15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주말 내내 이어진 키프로스 정부와 유로존 재무장관들의 구제금융 협상이 타결되었다. 최종결론은 아직 알 수 없으나 대규모 예금자들의 막대한 손실과 자본통제는 불가피할 것이다.

 

인구 100만명의 작은 섬나라 키프로스가 유로존 금융위기의 새로운 암세포로 확인된 것은 지난 16일이었다. 유럽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은 재정위기에 빠져 있는 키프로스의 국가부도를 막기 위한 구제금융안을 발표했고, 이는 곧 키프로스 국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국제금융시장의 긴장을 불러왔다.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10만유로 이상의 예금에 9.9%, 10만유로 미만의 예금에 6.75%의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재정위기에 아무런 책임이 없는 일반 국민의 예금에 세금을 부과해서 키프로스 국채에 투자한 헤지펀드의 이익을 보호하는 꼴이니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또한 예금보험제도를 무시하고 소액예금자에게도 은행 부실의 책임을 물린다고 하니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등의 예금자들이 자국에서도 앞으로 이런 사태가 일어날 것을 우려한 나머지 대량 예금인출에 나설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된 것이었다.

 

이후 사태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국민의 분노에 떠밀린 키프로스 의회는 구제금융안을 만장일치로 부결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키프로스 정부는 대규모 예금에 한정해서 무려 40%의 손실을 부과하고 예금을 동결하는 등의 새로운 구제금융 조건에 합의했다.

 

구제금융이라면 뼈아픈 기억이 있는 우리로서 키프로스 사태를 남 일 보듯 할 수는 없다. 몇 가지 핵심적인 교훈을 짚어본다.

 

첫째, 금융 주도 성장의 위험성이다. 키프로스 재정위기의 원인은 은행 부실이고, 은행 부실의 원인은 그리스 국채 채무조정에 따른 투자손실이다. 그런데 키프로스는 금융비밀주의와 낮은 세율, 규제완화로 무장한 조세피난처로서 막대한 외국자금을 끌어모아 금융 주도 성장을 한 나라다. 특히 러시아 부호들의 탈세와 자금세탁에 적극 협조했다. 그 결과 금융자산이 국내총생산(GDP)의 일곱 배, 은행 예금만도 국내총생산의 네 배에 달하는 금융과잉을 초래했고, 내수시장이 작은 은행들은 고수익을 좇아 그리스 국채에 투자했던 것이다. 아이슬란드나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그랬던 것처럼 금융 주도로 성장을 도모하는 것은 결국 모래 위에 누각을 짓는 격이다. 제아무리 혁신을 해도 금융이 스스로 창출하는 경제적 가치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실물경제의 도우미 구실을 넘어서는 금융의 팽창은 예외 없이 거품과 위기를 낳는다.

 

둘째, 경제정책 결정에서 민주주의의 중요성이다. 애초의 구제금융 방안은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려는 유럽중앙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입장과 조세피난처로서 러시아 등의 자금세탁 비즈니스를 지속하려는 키프로스 정부의 입장을 절충하고, 이에 따라 금융안정을 위한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예금보험제도까지 무시하면서 힘없는 소액예금자의 돈을 강탈하자는 계획이었다. 가진 자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이를 방치하면 시장경제의 원칙도 무너진다. 키프로스 의회의 구제금융안 거부는 민주주의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셋째,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국제금융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금융안정과 99%의 이익보다 국제금융자본의 이익을 우선하는 국제금융기구가 그렇고, 선진 각국의 재정위기에도 불구하고 부자들과 대기업들의 탈세를 방조하는 조세피난처들이 버젓이 장사를 하고 있는 현실이 또한 그렇다. 초과수익을 좇아 떠돌아다니는 핫머니의 유혹도 여전하다. 위기는 지나간 일인 양 국제금융시장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망각하면 우리도 큰일 날 수 있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