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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세상 읽기] 종교의 자유와 차별금지법 / 정정훈辯護士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4. 24.

등록 : 2013.04.23 19:08 수정 : 2013.04.23 19:08 [한겨레]

정정훈 변호사

 

 

 

민주통합당 소속 두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되었다. 일부 기독교단체로부터 많게는 하루에 1000여통의 항의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니 그 고충을 헤아릴 수는 있겠다. 그러나 ‘법 앞의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할 의무가 있는 국회의원이 부당한 압력을 이유로 법안을 철회한 것은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런 움직임이 최근 민주통합당이 보여주는 ‘우클릭’의 일환은 아닌지,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부 보수 기독교단체의 주장은 차별금지법에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종교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성애가 불법이라는 주장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는 부당한 차별이다. 또한 차별금지법은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뿐만 아니라 ‘종교’를 이유로 한 차별도 금지한다. 차별금지법은 신앙과 교리에 근거한 정당한 종교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자유와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 금지의 제도적 조화를 모색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정립하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서구 사회에서 동성애 차별 금지를 입법화한 이후의 경험은 종교의 자유와 차별 금지의 제도적 조화를 모색해가는 경험을 보여준다. 이와 관련한 사례 하나를 소개한다.

 

대표적인 남성 천주교단체인 ‘나이츠 오브 콜럼버스’(Knights of Columbus)는 대관 계약을 체결한 뒤 대관 장소가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 피로연장으로 사용될 것임을 알고 계약을 철회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2005년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인권법원 판결은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 금지와 종교의 자유의 충돌을 해결하는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대관 계약은 결혼식이 아니라 결혼 피로연을 위한 것이므로 비록 천주교단체라고 하더라도 결혼 피로연 목적의 시설 이용을 거절할 권한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법원은 천주교단체는 교리와 신앙에 근거하여 동성간 결혼식에 자신의 시설을 대여하는 것을 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계약 체결 이후에 시설이 결혼 피로연에 이용되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경우에도 시설 제공을 강제하는 것은 핵심 교리상의 신념에 반하여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이미 계약이 체결된 상황에서는 양자의 이익을 조화롭게 조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며,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계약 당사자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곧, 계약을 철회한 뒤 바로 계약 당사자들과 만나 상황을 설명하고,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등의 방식으로 두 당사자 간의 이익을 조정할 수 있었는데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채 그저 계약을 철회한 것은 단순한 계약 위반이 아니라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2005년 이후 동성결혼을 제도적으로 허용할 정도로 동성애자 차별 금지에 적극적이지만, 종교의 자유도 같은 수준에서 합리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종교의 자유와 동성애자의 인간적 존엄을 동시에 보장하기 위한 조화로운 해결책을 얼마든지 찾아갈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라는 최소한의 전제를 근거로 구체적인 판단기준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는 우리 헌법의 해석·실천과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수준에 따라 결정되는 열린 문제다. 그 열린 논의의 지평에서는 어느 집단도 정당성을 독점할 수 없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필요한 것은 종교적 도그마가 아니라 사회적 대화이며, 차별금지법은 이러한 사회적 대화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민주적 조건이다.

 

정정훈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