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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세상 읽기] 민주당, 버려야 산다 / 유종일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1. 22.

등록 : 2013.01.21 19:26 수정 : 2013.01.21 19:26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민주당이 백척간두에 서있다.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도대체 몇 번이나 선거 패배를 되풀이하고 있는지 세기도 힘들다. 지방선거에서 한번 이겼지만, 그거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지 민주당에 대한 지지의 표현은 아니었다. 더구나 지난 총선과 대선은 매우 유리한 선거를 망쳤기 때문에 그 상처가 치명적이다. 민주당, 과연 기사회생할 수 있을까?

지난 대선은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각각 총결집한 선거였고, 여기서 졌으니 앞길이 막막하다는 둥, 원래 한국 사회는 보수가 진보보다 우위에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둥, 그러니 앞으로 야권은 정책과 이념에서 중도로 가야 한다는 둥, 이런 식의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따라간다면 민주당은 머지않아 소멸하고 말 것이다.

 

 

박근혜 후보를 선택한 많은 유권자들은 보수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진보를 거부한 것도 아니다. 단지 누가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고 누가 국정운영을 더 잘할까 하는 관점에서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보다는 박근혜 후보와 새누리당이 조금이라도 낫다고 판단했을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문재인 후보를 찍은 많은 유권자들도 딱히 진보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언제부터 진보였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보수니 진보니 하는 딱지에 별 관심이 없는 대다수 국민들을 제멋대로 진영논리에 따라 구분하고 재단하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다.

 

 

과연 대선 패배가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었는가? 그래도 48%를 받았으니 선전한 것인가? 터무니없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다. 보수진영의 후보마저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전면에 내세울 정도로 국민 여론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다. 야권과 진보세력이 이슈를 주도해야 마땅한 판이었다. 그러지 못한 무능의 근저에는 기득권에 대한 집착이 있었다. 그 때문에 총선에서는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던 상대 당한테 단독과반을 헌납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반성과 혁신은커녕 ‘사실상의 승리’라는 궤변으로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으니 대선 패배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단일화 국면에서 안철수라는 소중한 자산에 상처를 준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일이다.

 

 

영호남의 인구 비중이나 인구 고령화를 들어 보수 우위 구도의 고착화를 예측하는 것도 옳지 않다. 영남 사람이건 노인이건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후보를 선택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 서민들은 자기편이 누군지도 모르고 ‘계급배반투표’를 한다고 불평한다. 오만한 시각이고 비겁한 변명이다. 민주당 정권에서 등록금도 집값도 엄청 뛰고 비정규직 비중과 빈부격차가 크게 늘어난 사실은 어찌하란 말인가. 민주당 공약이 진보적이었다고? 당원들이 제대로 토론 한번 하지 않고 엄청난 노선 선회를 하는 정당을 어찌 믿나. 전당대회를 해도 늘 당권 싸움만 했지 정강정책을 두고 논쟁 한번 했던가.

 

민주당이 살아나려면 기득권 포기부터 해야 한다. 립서비스는 사절이다. 총선·대선 패배에 책임이 큰 이들 다섯명이라도 의원직 정도는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계파 안배의 장막 뒤에 숨으려 하지 말고 당원들의 치열한 토론과 엄정한 평가를 통해 스스로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 낡은 이념 틀과 진영논리는 벗어던지고 오로지 민생을 화두 삼아 민심의 바다에 겸손하게 다가가야 한다. 정권의 실정에 기대어 반사이익이나 챙기려던 구태를 청산하고, 미래 비전을 마련하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남 눈의 들보보다 제 눈의 티끌을 먼저 보고, 심판과 증오의 언사보다 창조와 연대의 언어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유종일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