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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물 건너왔다 하면 40만원 가방이 130만원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19.
[중앙일보] 입력 2013.03.19 00:18 / 수정 2013.03.19 00:18

[J report] 유통개혁, 이젠 실천이다 (하) 공산품

“백화점이나 인터넷쇼핑몰에 내는 수수료만 10% 낮춰도 당장 소비자가를 10% 낮출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가죽가방 등을 수입하는 A 사장은 18일 “수입품이 왜 유독 한국에서 비싸냐”는 기자의 질문에 “백화점 수수료가 수입 원가보다 비싸기 때문”이라고 했다. 유럽에서 100만원에 팔리는 가방의 경우 이 가방의 수입 원가는 40만원인데 백화점에 내는 판매 마진(수수료)이 45만원이나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운임과 통관비용, 인건비 등을 더해 최종 판매가는 130만원이 된다. <그래픽 참조> 현지 판매가보다 30%나 오르는 것이다. 그는 “강남역·가로수길 등에는 단독 매장을 낼 수 있는 장소도 거의 없고 임대료가 비싸 백화점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형 유통업체에서 운영하는 인터넷쇼핑몰에도 입점했지만 이곳도 수수료가 30%로 만만치 않다. A 사장은 “인터넷몰은 매장과 점원도 없는데 지나치게 비싸다”며 “우리 업체 홈페이지에서 더 싸게 팔면 인터넷몰 업체가 난리를 치기 때문에 가격 차별화도 못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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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입 제품의 가격은 고무줄이다. 유럽 현지에서 850유로(약 122만원)에 팔리는 발리 핸드백이 한국 백화점에 오면 197만원이 된다.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마케팅 비용, 매장관리와 인테리어비, 백화점 등 매장 수수료 등이 포함됐다. 그런데 같은 제품을 편집매장에선 168만원에 판다. 빅마켓 같은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에서는 현지 소매가보다 싼 120만원까지 내려간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일까. 답은 ‘병행수입’에 있다.

 병행수입은 흔히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해외 본사로부터 국내 독점 판매권을 받은 업체가 아닌, 제3의 업체가 해외 도매업자 등을 통해 물건을 수입해 들여와 국내에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물건은 이른바 ‘정품’이지만 국내 독점 판매권을 본사와 맺지 않은 경우다. 국내법은 LG패션의 ‘닥스’ 브랜드처럼 라이선스를 받아 국내에서 생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식 완제품을 별도의 경로를 통해 수입해 들여오는 병행수입은 허용하고 있다. 가격은 수입·판매업체가 임의로 정할 수 있다. 대리점 운영비, 마케팅비, 유통 수수료 등이 들지 않다 보니 병행수입 상품은 백화점보다 30~40% 넘게 저렴해 인기를 모으고 있다. 이 때문에 이마트·롯데마트·이랜드리테일 등 대형 유통업체도 미국·유럽 등지에 사무소를 내고 병행수입을 활발히 하고 있다. 롯데마트의 경우 지난해 32개 브랜드 60억원어치를 수입했는데, 올해는 51개 브랜드 120억원어치를 수입 판매할 예정이다. 새 정부에서도 “병행수입이 늘어나면 가격 경쟁을 통해 공산품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며 대형마트 등에 병행수입을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병행수입에는 걸림돌이 많다. 우선 물량 확보가 어렵다. 해외 도매업체들이 각기 취급하는 물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코리아가 “해외에 물건을 넘기는 도매업체들을 단속하라”고 본사에 요구해 공급망이 끊겨버리는 경우도 빈번하다. 병행수입은 재고나 특가 상품으로 싸게 나온 것을 들여오는 경우가 많지만 미리 주문을 넣고 항공편을 통해 공수해 배로 물건을 들여오는 ○○○코리아보다 빨리 신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한 대형마트 병행수입 담당자는 “신상품을 먼저 들여왔다고 ○○○코리아로부터 ‘밤길 조심하라’는 위협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말했다.
 
 병행수입의 가장 큰 장애물은 ‘짝퉁 논란’ 같은 불신의 문제다. “같은 제품이라면 왜 가격차가 많이 나는 것이냐”며 소비자들이 의심을 거두지 않기 때문이다. 사후서비스(AS)가 어려운 것도 병행수입의 한계점이다. 15년째 병행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2) 사장은 “나는 독점 수입업체도 함께 운영하지만 병행수입을 활발히 해 가격 경쟁을 해야 물가를 낮출 수 있다는 데는 100% 동감한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도 업계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 정식으로 병행수입한 물건이라고 정부가 인증한 QR코드를 부착하는 ‘QR코드 인증제’가 5월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된다. 장당 약 150원을 부담해야 되지만 수입업체들은 “짝퉁 논란이 잦아들 것”이라며 환영했다. 공동 AS센터 운영, 반품 보증제 등도 대안으로 제시된다.

 아웃렛도 공산품 거품 가격을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인 ‘거품 가격’으로 거론되는 의류의 경우 제조원가의 4~5배로 백화점에서 판매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매가의 35~40%가 백화점에 ‘마진’이라는 이름으로 나간다. 패션업계의 한 관계자는 “숍매니저 등 소사장에게 판매가의 15%를 주고, 인테리어와 통신비 등을 합치면 의류 판매가의 약 60%가 유통비용”이라고 말했다. 또 고객 반응을 예상하기 어렵다 보니 정상가로 팔리는 옷은 30%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단계별 세일과 아웃렛 등을 통해 판다. 이런 재고 부담비까지 고려해 업체에서 원래 옷값을 높게 매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내 대형 백화점 여성복 담당 바이어는 “거리 매장의 점주가 받는 매출 수수료도 40% 이상”이라며 “의류업체에서 브랜드 이미지, 상권 등을 고려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화점 판매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고 의류는 아웃렛으로 넘어가 1년 차는 40~50%, 2년 차는 60~70% 할인 판매한다. 그런데 최근 패션 업체들이 아예 JJ지고트, 미셸 by TENDY 등 아웃렛용 브랜드를 출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판매 수수료가 20%로 백화점의 절반에 가까운 점을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합리적 소비’가 늘어나면서 아웃렛 매출은 연 30%씩 성장 추세다.

특별취재팀=최지영·장정훈·구희령·김영민 기자

◆ 수입가 40만원 가방, 팔 땐 130만원


▶수입 원가는 40만원

▶운임·통관·관세 12만원

▶판매사원 인건비 8만~10만원

▶부가가치세 13만원

▶수입업체 이익 10만원

▶백화점 수수료 45만원

=국내 백화점에서 130만원에 판매

[자료= 이탈리아 수입업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