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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common sense)

람보르기니에 받힌 택시, 7천만원 물어줄뻔 왜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18.
[중앙일보] 입력 2013.03.18 00:09 / 수정 2013.03.18 08:07

[사건추적] 수입차 75만 대 … 수리비 폭탄
7억여원 나와 … 과실책임은 9:1
피해자지만 7200만원 물어줄 뻔
손보협, 비정상적 비용 손질 나서

지난 8일 오전 1시쯤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 앞. 도로 위를 시속 60㎞로 달리던 택시기사 A씨는 트렁크 부분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을 느꼈다. 그는 곧바로 차를 세우고 내렸다. 자신의 YF쏘나타 택시 뒷부분을 들이받은 차는 스포츠카였다. 이 스포츠카 운전자 B씨는 “1차로에서 차선변경을 하다 부딪쳤다”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보험사도 사고 원인의 90%가 B씨의 과실, 택시 기사 A씨의 책임을 10%로 봤다. A씨는 ‘보험사에서 알아서 처리하겠지’라고 생각해 사고 현장을 떠났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영업용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 차량과 비슷한 급의 람보르기니 고급형 모델.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데 3.4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중앙포토]▷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보험사로부터 연락을 받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스포츠카 수리에 드는 총 비용이 7억2000만원 정도 나왔다. 이 중 10%인 700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고 통보해온 것이다. A씨가 몰았던 택시의 수리비는 170만원에 불과했다. 알고 보니 상대방 차는 이탈리아제 람보르기니였다. 최고속도 시속 340㎞에 가격이 최고 20억원에 달한다는 이른바 ‘수퍼카’였다. 자동차 전문가인 장진택 카미디어 대표는 “이런 종류의 스포츠카라면 부품을 직접 이탈리아에서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수리하는 데 두세 달은 족히 걸린다”고 전했다. 그는 “부품값도 문제지만 그 시간 동안 하루 렌트비용이 350만원(시가 5억원대 스포츠카 기준) 이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A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회사가 보험을 들어놨지만 사고에 따른 보험수가 인상 부담이 자신에게 전가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다행히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B씨가 택시회사 측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큰 피해가 안 가는 쪽으로 합의를 봤다. 보험사 관계자는 “피해자는 누가 봐도 택시기사지만 수입차와 얽힌 사고에서는 피해자도 큰 금전적 손실을 입곤 한다”고 했다.

 
 점점 늘어나는 수입차 때문에 A씨처럼 사고를 당하고도 수입차 수리 비용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이들이 많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수입차 대수는 지난해 말 기준 75만여 대다. 이 중 10% 정도가 1억원이 넘는 고가차다. 수입차 보험사고 역시 지난해 25만여 건으로 2011년(20만여 건)보다 25% 급증했다.

 도로 위 수입차를 공포의 대상으로 만드는 건 국산차에 비해 턱없이 비싼 수리비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보험사들이 2011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수입차 사고 한 건당 지급한 평균 수리비는 261만8000원이었다. 국산차 평균 수리비(84만6000원)보다 세 배 정도 더 비쌌다. 김필수 대림대(자동차학) 교수는 “비슷한 부품이라도 수입차 부품이 국산차보다 4~5배 이상 비싸고 공임비도 평균 2배 정도 높다”고 지적했다.

 국산차보다 더 긴 수리 기간 동안 비슷한 급의 차량을 빌려줘야 하는 렌트비용도 심각한 수준이다. 민병두 민주통합당 의원이 국내 5개 손해보험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보험사가 수입차를 위해 지급하는 보험금 중 3분의 1이 렌트비로 나가고 있었다. 손해보험협회는 이 때문에 국산차 이용자들의 보험료 부담도 높아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지난달 말 ‘수입차 수리비 점검 특별팀’을 구성했다. 협회에 따르면 특별팀은 수입차 부품 가격과 수리비, 렌터카 비용의 적정성 등을 검토하고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최근 금융위원회에 보고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수입차 17개 차종의 자차보험료가 5~10% 정도 인상될 예정이다.

협회 관계자는 “차종별 적정 렌터카 비용을 산출하고 비정상적인 비용에 대해서는 제동을 거는 시스템도 마련할 것”이라며 “정비 공장에서 렌터카 업체를 소개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보험개발원 권흥구 자동차보험서비스부문장은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좀 더 명확하게 구분해야만 사고를 당하고도 오히려 금전적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자동차보험 가입이나 갱신할 때 대물배상보험의 한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삼성화재 최원규 전략운영파트 과장은 “1만~2만원 정도의 추가 비용을 내고 한도를 2억, 3억으로 높이는 것이 외제차 사고에 대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윤호진 기자

◆대물보상보험=다른 운전자의 차량 수리비 등 각종 손실을 보상해주는 의무가입 항목으로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상 기본 한도는 1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