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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진의 시시각각] 국민 우롱한 ‘30% 삭감’ 공약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18.
[중앙일보] 입력 2013.03.18 00:20 / 수정 2013.03.18 00:20

김진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지난해 대선에선 허망한 공약들이 춤을 추었다. 가장 황당한 건 민주당 경선후보 김두관의 작품이었다. 그는 출마선언문에서 “서민과 중산층의 매월 생계비를 50만원 줄이겠다”고 했다. 이는 ‘반값 아파트’보다 더 황당한 것이었다. 김두관은 요술 같은 방안을 내놓았다. 그는 음성통화·문자를 무료로 하고 정부가 무선 인터넷망을 구축해 통신비를 낮추겠다고 했다. 주택수당을 도입해 주거비용을 줄이고 중병도, 틀니도, 임플란트도 건강보험으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가 대통령이 됐다면 통신 3사는 망하고 건강보험은 거덜났을 것이다. ‘황당’이라는 비판이 우박처럼 쏟아지자 그는 급속히 추락했다.

 최대 졸속은 안철수 후보 작품이었다. 그는 느닷없이 국민이 가까운 곳으로 청와대를 옮기겠다고 공약했다. 이 중요한 사업을 왜, 언제, 어디로, 무슨 돈으로 하겠다는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그저 불쑥 소통을 위해서라고 했다. 졸속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안 후보 측은 슬쩍 발을 뺐다. 집권하면 국민토론으로 시기와 장소를 정하겠다고 했다. 국민토론을 그렇게 좋아하면 ‘노원병 출마’는 왜 토론에 부치질 않는가.

 최대 악성(惡性)은 민주당의 ‘세비 30% 삭감’ 공약이었다. 투표를 18일 앞두고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의원들은 갑자기 특별 의원총회를 열어 이같이 결의했다. 당시 박지원 원내대표는 “어려움 겪고 있는 국민들과 함께 한다는 취지로 세비를 30% 삭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틀 후 민주당 의원 전원은 30% 삭감을 담은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공약의 질이 특별히 나쁜 건 국민 수준을 너무 낮게 보았다는 것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세비를 30%나 줄이라고 요구한 국민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자신들이 먼저 삭감하겠다고 공약하고 나선 것이다. 돈 문제를, 자진해서, 대폭으로 거론하니 유권자가 감동을 먹을 거라고 민주당은 계산했던 것 같다. 사탕을 흔들면 어린이가 따라올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심각하게 틀린 계산이었다. 한국 유권자는 어린이가 아니었다.
 
 ‘돈’ 문제는 언제 어디서든 개인이나 집단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사안이다. 민주당에 조금이라도 진정성이 있었다면 선거 후 작은 실천이라도 있어야 했다. 민주당은 “우리는 법을 냈는데 새누리당이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새누리당은 세비 삭감 공약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약을 한 민주당만 지키면 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있다. 자신들은 대표적인 약속 하나 지키지 않으면서 대선공약을 지키려는 대통령의 발목을 잡았다. 케이블망 사업자와 공정방송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민주당은 막판에 특정 방송사 사장의 사퇴와 검찰수사를 요구했다. 아니 그 사장 문제와 정부조직개편이 무슨 상관인가. 일종의 끼워팔기 아닌가. 민주당이 무슨 잡화 소매상인가.

 세비 액수를 줄이는 건 법 개정사안이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30% 삭감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만큼 사회에 환원하면 된다. 의지만 있다면 아주 쉬운 길이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응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상당수가 대선 때 영문도 모르고 30%에 도장을 찍었을 터이다. 내용을 알았어도 지금은 ‘화장실 전과 후’가 다를 것이다. 그러니 의원 모두가 30%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상징적인 인물만이라도 30%를 환원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선후보, 문희상 비대위원장, 박지원 당시 원내대표, 박기춘 원내대표만이라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민주당은 최근 당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30% 삭감을 지키지 않는 한 어떤 안을 내놓아도 진정성이 없을 것이다. 그들은 국민을 어린아이로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불행하게도 어린아이들의 비상한 기억력을 몰랐다.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