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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칼럼

‘사회적 경제’ 실험, 협동조합이 꽃피려면 [2012.11.30 한겨레사설]

by 부산중구마중물 2012. 11. 30.

내일부터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돼 5명 이상만 모이면 금융·보험 분야를 제외한 다양한 영역에서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된다. 법 시행으로 지역농협 1000명, 소비자생협 300명 등의 까다로운 진입장벽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익숙했던 기업과는 소유구조, 운영원리, 이익 분배 방식 등이 다른 소규모 경제주체들의 집합체가 탄생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새로운 협동조합 시대는 여러모로 의미가 각별하다. 우선 돈보다 사람이 우선인 ‘새로운 경제’, 달리 표현해 ‘사회적 경제’ 모델이 우리의 삶 속에서 자랄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새로운 협동조합에선 조합원 한 사람이 전체 지분의 30% 이상을 소유할 수 없고, 의결권도 출자금액에 관계없이 1인1표로 이뤄진다. 1주1표의 원칙에 따라 지분 크기가 권한을 좌우하는 상법상 기업과 사뭇 차이가 난다. 당연히 호혜와 배려, 협력이 주된 운영 원칙이 된다. 잉여금도 10% 이상을 적립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자영업자 등 경제적 약자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기도 하다. 당장 법 시행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대리운전자, 동네 슈퍼·미용실 주인, 막걸리 제조업자, 친환경 농업인, 출판업자 등 다양한 분야의 영세사업자들이 협동조합 결성을 진행하고 있다. 다윗들이 힘을 모아 골리앗인 대형업체와 대기업에 맞설 수 있는 서비스와 가격을 제공한다.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협동조합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부는 내년에만 협동조합 기업이 3000개가량 생길 것으로 전망한다고 한다. 재벌개혁과 함께 협동조합 활성화가 경제민주화의 주요한 축으로 기대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영리법인인 ‘사회적 협동조합’이 가능해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육아나 교육, 돌봄 등 주로 복지 관련 영역에서 기부와 봉사 등을 조직화·체계화해 나눔 실천의 폭을 넓혀줄 것으로 기대된다. 대기업들도 사회적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협동조합기본법 시행이 당장 세상을 뒤바꾸는 것은 아니다. 협동조합을 통해 사회적 경제가 꽃필 수 있으려면 제도적 개선과 의식 변화 등이 뒤따라야 한다. 협동조합의 창업을 지원할 전문기관이 많이 세워져야 하며, 사회적 경제 관련 정책을 조율할 정부 차원의 기구도 갖춰야 한다. 아울러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의 의미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통해 사람 존중의 가치관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협동조합은 결국 마르고 시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