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청 엄벌을 뼈대로 한 통비법에 당시 안기부가 그토록 저항했던 속내는 나중에 드러났다. 중앙정보부 이래 요인에 대한 불법도청을 해온 안기부는 법 제정 뒤에도 이른바 ‘미림팀’을 통해 거의 매일 각계 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미행·도청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뒤 면직된 미림팀장 공운영은 재미동포 박인회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도청테이프 중 일부를 넘겼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초 문화방송 이상호 기자 손에 들어간 도청 녹취록 ‘엑스파일’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특히 1997년 대선을 앞두고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이 만나 여야 대선 후보 자금지원과 검찰 간부들에 대한 ‘떡값’ 전달 방안을 논의한 대화록이 그대로 보도되면서 홍 당시 주미대사가 물러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황당하게도 검사들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의원과 기자들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고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를 받던 삼성가 두 사람과 검사들은 모두 빠졌다. 결국 노 의원은 기소 6년 만인 지난주 의원직을 잃었다.
애초 정보·수사기관의 마구잡이 도청을 막기 위해 만든 통비법이 최근엔 내부고발자나 언론인·정치인들의 족쇄를 채우는 도구가 돼버렸다. 법 취지를 곡해한 검찰과 법원의 잘못이 크다. 또 공익 목적의 공개 행위도 예외 없이 엄벌하도록 하는 등 법 제정 당시 예상치 못한 대목들은 고칠 때가 됐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