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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2013재보선

[박희봉 칼럼] '안철수표' 새 정치

by 부산중구마중물 2013. 3. 21.

고난의 시간 없이 뚜렷한 비전 없이 개벽이 가능할까

   
안철수가 돌아왔다. 도망가듯 미국으로 떠난 뒤 82일, 너무 빠른 귀환이다. 대선 과정에 대한 생각이 곰삭기도 전에 환한 얼굴로 한국 땅을 밟았다. 대선 이후의 정국을 지켜보면서 때가 됐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 곰이 표범으로 변신했으니 상당히 낯설다.

한 언론이 국민들에게 물었다. 안철수 신당이 창당되면 누굴 지지하겠느냐고. 새누리당, 안철수당이 1, 2위를 했고, 민주통합당이 10% 이상 뒤진 3위를 했다. 이건 되짚어 봐야 할 결과다. 질문 문항에 따라, 시기에 따라 편차가 적지 않은 게 여론조사다. 이걸 곧이 곧대로 믿는 게 현명할까.

서울 노원병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 한 여론조사 기관이 지지도를 발표했다. 안철수 42.8%, 새누리당 31.2%, 민주통합당 11.8%…. 도대체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린가. 아직 정당 후보도 오리무중이다. 상대도 없는 설문조사라니…. 입에는 꿀이지만 뱃속에 칼이 든 느낌이다.

안 후보의 노원병 출마는 너무 쉽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고 했다. 절체절명의 순간 죽을 힘을 다해야 한 발짝을 내디딜 수 있는 법이다. 새 정치를 이야기하면서 안전을 찾는다? 안전하고 편한 곳에 개벽은 없다. 뒷맛도 텁텁하다. 노회찬 의원이 씁쓸하게 물러난 뒷자리 다툼이라니. '새가슴' 논란이 나올 만하다.

민주통합당은 '미래 대통령' 논란을 일으키더니 노원병 선거에 후보까지 낼 모양이다. 적당한 시점에 사퇴할지는 모르지만. 새누리당은 느긋하다. 그들이 뭉치든, 흩어지든 잃을 게 없다.

신당 이야기도 빈 수레다. 야권발 정계 개편, 새 정치 바람이라고? 고작 세 곳 중 한 곳에 후보를 냈을 뿐이다. 연못에 돌 하나 던진다고 물이 넘쳐날까. 지난 총선이었으면 아마 제3당은 가능했을 법하다. 한데 지금은…. 아무리 봐도 때를 놓쳤다. 다음 총선이라면 또 모를까. 손학규 전 대표와의 제휴설도 흘러나왔다. 그게 사실이라 쳐도 파괴력은 크지 않다. 당을 옮기거나 노선을 바꿔 성공한 예는 드물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연대설에 대해 '소설'이라고 일축했다. 무엇보다도 대선이 너무 멀어 힘의 결집을 어렵게 한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그는 "새로운 정치 국민이 주인이 되는 국민을 위한 정치를 위해 어떤 가시밭길도 가겠다"며 "국민 위에 군림하고, 편을 갈라 대립하는 높은 정치 대신에 국민의 삶과 국민의 마음을 중하게 여기는 낮은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패러디 솜씨는 늘었지만 여전히 추상적이다. 울림이 있는 시와 음악은 단순함에서 나온다. 그 단순함은 가슴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안철수 표' 새 정치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은 정치적인 보폭부터 정해야 한다. 이념을 넘어서는 정치라지만 현실 세계엔 그런 게 없다. 이념적 스펙트럼이 진보 쪽은 아닌 듯하니, 그러면 새누리와 민주통합당 사이쯤인가. 자신이 딛고 선 땅이 어딘지 여전히 아리송하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어떤 것인가. 지금까지 그 답을 듣지 못했다.
새 정치가 어떤 것인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정치는 어차피 국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생각을 설득해 나가는 과정이다. 소통의 정치, 통합의 정치, 문제해결의 정치라? 주제가 너무 크다. 너무 큰 이야기는 황당함과 통한다. 개천이 있고 나서 강과 바다가 있는 것이다.

정치는 세력인데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되는가. '어리석은 늙은이가 산을 옮긴다' 시간만 무한하면 가능하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다. 몇몇 사람들을 갖고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산 하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정치적 자산은 있는가. 정치신인이 대통령이 되는 방법은 쿠데타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꿈의 제국은 이뤄지지 않는다. '천 일 연습하는 것을 단(鍛)이라 하고, 만 일 연습하는 것을 련(鍊)이라 한다'는 말 못 들어봤는가. 정치에는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 정치는 새로워져야 하고, 판을 바꿀 필요도 있다. 하나, 어부지리로 대세를 바꿀 순 없다. 좌산관호투(坐山觀虎鬪)라고, 두 범의 싸움에서 이익을 얻는 건 답이 아니다. 스스로 범이 되지 않으면 국민의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다. 이왕에 정치를 하려면 의미있는 행보를 하길 바란다.